[한시를 영화로 읊다]<2> 모스 신호
淸시인 황준헌, 그리운 임 소식을 이별때 눈물 같던 전보에 묘사
영화 ‘기생충’에 등장한 모스 신호… 수신여부 모르지만 끝없이 보내
단절과 부재도 마음은 막지 못해
1894년 김동호(金東浩)는 청나라로 가는 조선의 마지막 사행단을 따라 북경에 갔다. 그가 맡은 임무는 전보국을 통해 경성의 소식을 수집하고 청일전쟁의 전황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격변의 와중에 전선이 끊긴 줄도 모르고 그는 하염없이 고국의 소식을 기다렸다. 김동호를 이다지도 애타게 만든 전보를 한시로 읊은 것은 조선의 개화파에 영향을 미친 청나라 시인이자 외교관 황준헌(黃遵憲·1848∼1905)이었다.
황준헌은 사신으로 영국에 가서 ‘금별리(今別離)’를 썼다. 금별리는 ‘오늘날의 이별’ 쯤으로 번역할 수 있는데, 시인이 새롭게 붙인 것은 아니다. 고대 민간의 노래를 채집하던 관청의 이름에서 유래한 악부시(樂府詩)의 제목이다. 옛 악부시에 ‘고별리(古別離)’ ‘암별리(暗別離)’ 같은 이별노래가 있다. 시인은 사라진 옛 노래를 흉내 내 이별은 늘 있었고 또 언제나 현재적임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이 시의 특별함은 임에 대한 그리움을 봄물 방초(芳草) 복사꽃 수양버들 뜬구름 연초(烟草) 따위가 아니라 새로운 문명의 이기인 전보를 통해 써내고 있다는 점에 있다. 한시를 혁신했다고 할 만하다. 시인은 특히 짧고 긴 신호로 전송되는 모스 부호의 점과 선에 주목했다. 그것은 먹물로 찍힌 부호지만 떠나는 길에 흘렸던 눈물과도 흡사하다.
세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2018년)에서도 이 모스 신호가 중요하게 등장한다. 부잣집 박 사장 내외의 어린 아들이, 지하층에 기생하는 가정부 문광의 남편 근세가, 또 운전기사 기택이 모스 신호를 보낸다. 하지만 그 신호들은 끝내 닿지 않거나 닿았는지 알 수 없는 깜박임이 되고 만다. 특히 기택과 기우 부자의 편지가 그렇다. 아버지는 아들이 자신의 모스 신호를 받았는지 알 수 없고, 아들도 자신의 편지를 아버지에게 전달할 방법을 알지 못한다.
영화의 시작과 끝을 장식한 와이파이와 모스 신호는 각각 시대를 대표하는 통신기술이지만, 연결되지 않거나 전해지지 않는단 점에서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리움이란 어떠한 도구로도 전할 수 없는 것일까. 기기와 기기가 연결되어도 마음과 마음은 이어지지 않는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기우는 아버지 기택에게 자신의 ‘계획’을 밝히는 편지를 쓴다. 시적 화자도 자신이 번갯불처럼 빠른 모스 신호가 되어 임 곁에 닿기를 꿈꾼다. 그러나 이 모두가 불가능한 일이기에 그리움이 더욱 간절하게 우리 마음에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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