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서울 종로구 서촌의 가드닝숍 ‘노가든’ 앞에는 새벽부터 긴 줄이 생겼다. 최근 ‘핫한’ 화분인 ‘듀갸르송’ 토분(土盆)이 입고되는 날이었다. 최근 한두 달에 한 번씩 꼭 벌어지는 진풍경이다. 구매 수량을 모델 당 1개로 제한해도 당일 완판. 기다리고도 허탕 치는 이들이 적지 않아 ‘듀갸르송 대란’이라 불린다.
듀가르송 토분은 온라인에서도 1~2분 안에 품절된다. 남은 물량을 파는 오프라인 매장으로 사람들이 몰리는 이유다. 노은아 노가든 대표는 “원래 마니아층이 있었지만 코로나19 이후 불어닥친 가드닝(gardening·정원 가꾸기) 열풍으로 더 인기”라며 “‘레어템’ ‘핸드메이드(수제)’라고 SNS에서 입소문이 나 경쟁이 심해졌다”고 말했다. 사용했던 제품도 중고사이트에서 새것과 같은 시세나 웃돈을 얹어 거래된다.
코로나19 시대 재택근무 증가 등으로 가드닝 인구가 부쩍 늘면서 가드닝의 완성이자 ‘식물의 옷’인 화분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실내 환경과 인테리어에서 차지하는 식물의 비중이 급증하면서 화분 역시 대충 고를 수 없는 중요한 소품이 된 것.
이른바 ‘베란다 가드너’에게 가장 인기 있는 화분은 테라코타(terracotta) 토분이다. 점토를 섭씨 600~1000도에서 구워내 오렌지 빛이 돈다. 유약을 바르지 않아 소박하고 세월에 따라 빈티지한 멋이 더하는 화분이다. 통기성과 내구성이 우수한 데다 어느 식물에나 두루두루 잘 어울린다. 지중해나 유럽의 정원에서는 야외에 놓고 투박한 느낌을 즐긴다. 덴마크 베르그 화분 등이 이런 감성을 잘 보여준다.
테라코타 토분의 일종인 듀가르송이 ‘대란’을 부른 것은 국내 베란다 가드너들의 감성을 충족시키는 세련된 디자인에 색감을 더해서다.
박정진 듀가르송 대표가 사업을 시작하던 2011년만 해도 국내에는 제대로 된 토분이 드물었다. 프랑스에서 회화를 공부한 박 대표는 “귀국 후 좋아하는 화초를 기를만한 예쁜 화분이 없어 직접 만든 것이 사업이 됐다”고 말했다. 그때만 해도 다들 ‘도자기 만들다 생긴 불량품을 화분으로 쓰면 되는 거 아니냐’ ‘화분이 비쌀 이유가 뭐냐’고들 했다. 전공자 사이에선 화분 제작이 도자기에 비해 수준 낮은 작업이라 보는 풍토도 있었다. 하지만 몇 년 만에 전세가 역전됐다. 그는 “한국은 뭐든 빠르고 최고를 선호하는 문화가 강하다”며 “화분도 일단 한번 관심이 생기자 해외 수준을 빠르게 따라잡고 있다”고 말했다.
30, 40대 가드닝족(族)이 ‘감성 토분’에 열광하면서 듀갸르송뿐 아니라 카네즈센, 제네스포터리, 스프라우트 같은 도예가들이 직접 만드는 토분도 큰 인기다. 디자인이나 소재에 따라 가격대는 다양하지만 대게 지름 10cm 안팎의 작은 화분은 2만~5만 원, 30cm 안팎의 대형은 10만 원대다. 가격이 문제가 아니라, 수작업이어서 공급량 자체가 많지 않다. 가드너들이 선호하는 것은 공장에서 대량생산한 제품이 아니라 공방에서 일일이 사람 손을 거쳐 만든 것이다. 같은 모델이라도 똑같은 화분이 하나도 없어 ‘한정판’의 특별함을 준다. 일부 유약분도 토분과는 또 다른 매력으로 수집욕을 자극한다.
토분이 인기라고 해서 반드시 수제 화분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상대적으로 값이 나가는데다 무거워 손목에 무리도 많이 온다. 베란다 가드너라면 저렴하고 가벼운 플라스틱 화분을 섞어 쓰는 것이 필수다. 노은아 대표는 “데로마 토분과 엘호 플라스틱 화분이 가성비가 좋다”며 추천했다. 무엇보다 식물의 특성에 맞게 소재나 크기를 골라야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 고온다습한 환경을 좋아하는 식물이라면 통기성이 뛰어난 토분보다는 유약분이나 도자기 화분을 고르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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