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목숨 걸고 취재하는 AP 기자들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31일 03시 00분


◇AP, 역사의 목격자들/지오바나 델오토 지음·신우열 옮김/784쪽·2만6000원·크레센

신뢰와 조롱 사이를 외줄타기하듯 오가는 언론의 지위는 언제부터 출렁이기 시작했던가. 현장 기자들이 정도(正道)를 가기 위해 여전히 고군분투하는 것에 비해 ‘기레기’라는 말로 ‘기자’라는 이름의 무게가 속절없이 가벼워져 버린 요즘이다.

언론의 존재 이유에 많은 이가 의문을 제기하는 가운데, 저자는 세계적 통신사인 AP 특파원 61명을 인터뷰해 기자들이 마주하는 취재 현장 이야기를 담았다. 때로는 욕받이가 되면서도 왜 언론은 존재해야 하며, 관찰자의 사명감을 가진 기자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보여주기 위해서다.

1864년 미국 뉴욕에서 설립된 이후 AP는 6·25전쟁, 베트남전쟁, 9·11테러, 시리아 내전 등 전 세계 역사적 사건의 현장에 함께해 왔다. 책에는 5·18민주화운동을 취재한 특파원 테리 앤더슨 이야기도 등장한다. 1980년 앤더슨은 광주에서 군인들이 시위대를 향해 총부리를 겨눴던 참혹한 현장을 9일간 취재했다. 그가 묵던 호텔 방 벽에 총탄이 박히는 위험천만한 상황이었지만 ‘사실을 전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거리에 나가 방치된 시신 수를 셌다. 그날 군부가 발표한 사망자는 3명이었지만 그가 본 시신은 179구였다고 한다.

‘라떼는 말이야’ 같은 모험담도 당연히 포함돼 있다. 중국 톈안먼(天安門) 사태를 취재하다 중국 인민군에게 총살 위협을 당했다거나, 캄보디아 크메르루주 정권의 양민 학살 현장에서 헬기로 탈출하지 않고 끝까지 버텨 진실을 보도했다거나,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로 진격하는 탈레반의 심장으로 들어가 처형당한 전 대통령의 시신을 목격했다는 얘기 등이다.

역사의 현장에 있던 기자들의 무용담이 대부분이라 현실 기자의 삶과는 괴리가 있다. 대부분의 기자는 책에 소개된 사례들과 달리 (가끔 살해 협박을 받을 순 있어도) 생명을 걸고 취재하는 경우는 드물며, 데스크(상사)가 특파원 부임 통보를 하면서 “죽으면 네 시체는 찾으러 갈게”라고 말하는 경우는 더더욱 없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ap 역사의 목격자들#지오바나 델오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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