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스인어블루문’ 14일 마지막 공연
코로나-건물매각 탓 22년만에 폐업
히딩크 단골… 촬영지로도 유명
창업자 “언젠가 다시 문여는 상상”
“개업했을 때 처음 와보고 입이 벌어졌어요. 영화 속 1930, 40년대 미국 뉴욕 클럽 같은 분위기에 황홀했죠. 무대에 오르는 수요일마다 제가 냇 킹 콜이라도 된 기분이었으니까요.”
14일 저녁 서울 강남구 선릉로의 재즈 클럽 ‘원스 인 어 블루문’의 아티스트 대기실. 한국 1세대 재즈 보컬 김준 씨(80)가 ‘블루문’의 히스토리를 회고했다. 엷은 웃음, 젖은 눈으로.
국내 재즈 문화 성지로 자리했던 ‘원스 인 어 블루문’이 이날 공연을 끝으로 22년 세월을 등지고 문을 닫았다. 1998년 4월 개업한 ‘…블루문’은 강남의 문화 랜드마크였다. 영화 ‘가문의 영광’, 드라마 ‘파리의 연인’ ‘내 이름은 김삼순’ 등 영상물 촬영지, VIP 모임 장소, 해외 음악가의 공연 뒤풀이 장소로도 유명했다.
11일과 14일 만난 창업자 임재홍 사장(63)은 “감염병 유행 장기화로 영업이 쉽지 않은 데다 건물 전체가 매각돼 아쉽지만 접는다. 언젠가 여건이 허락하면 좋은 장소에서 다시 뵙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블루문’은 강남의 한 시대를 상징한다. 압구정 ‘오렌지족’ 시대의 끝물,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속에 문을 열었다. 임 사장은 19년의 대기업 생활을 청산하고 이 공간을 임대해 개업했다. 주변의 만류도 안 먹혔다. 학창 시절 꿈을 이룰, ‘지극히 드문 일생일대의 기회(once in a blue moon)’로 봤기 때문이다.
“전화위복이라고 할까요. IMF로 월급이 반 토막 난 특급호텔 셰프, 수요가 떨어진 고급 인테리어 자재를 비교적 수월하게 들일 수 있었죠.”(임 사장)
대기업에서 연마한 홍보·마케팅 수완으로 주한 외국인, 재미교포, 경제적 여유와 문화적 취향이 있는 이들을 공략했다.
“2000년대 초중반이 황금기였죠. 서울 예술의전당에 공연하러 온 윈턴 마살리스 빅밴드는 이틀이나 방문해 새벽까지 즉흥 연주와 뒤풀이를 했죠.”
2002 한일 월드컵 때는 여느 식당처럼 대형스크린을 설치해 응원전을 했는데, 한국전이 끝난 지 불과 한 시간여 만에 재즈 애호가인 거스 히딩크 전 국가대표 감독이 이곳에 달려와 객석을 뒤집어놓기도 했다.
14일 밤 12시까지 이어진 피날레 무대에는 이주미, 이정식, 김현미, 웅산, 김준 등이 출연해 ‘Take Five’ ‘What a Wonderful World’ 등 익숙한 재즈곡을 열연했다.
웅산 씨는 “재즈가 국내에서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갖는 데 기여한 소중한 공간이다. 사라진다니 형언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정식 씨는 “해외 음악가들과 격의 없이 어울린 추억을 잊지 못할 것”이라고 돌아봤다.
임 사장은 “폐업이 슬픈 소식으로 회자되는 걸 원치 않는다”면서 “하나의 트렌드에 휩쓸리지 않고 여러 스타일이 공존하는 문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인이 설 무대가 있는 환경을 꿈꾼다”고 말했다.
“저는 월요병을 한 번도 앓지 않았어요. 매일 ‘시크릿 가든’으로 출근하는 느낌이었거든요.”
임 사장은 줄곧 독신이다. ‘…블루문’ 하나로 충분한 삶이어서다. 그는 “스물두 살 아들과 사별하는 느낌”이라며 고개를 무대 쪽으로 돌렸다. 그의 젖은 시선이 무대 배경의 ‘ONCE IN A BLUE MOON’ 네온사인에 멎었다.
“지나 보니 참 행복한 세월을 보냈네요. 언젠가 다시 연 ‘…블루문’에서 한국 재즈 빅밴드가 ‘Fly Me to the Moon’과 ‘Blue Moon’을 연주하는 상상을 합니다. 메들리로 합쳐 ‘Fly Me to the Blue Moon’은 어떨까요. 다시 ‘…블루문’으로 날아가고픈 게 딱 지금 제 심정이거든요. 낮은 생존을 위한 시간이지만 밤은 한 사람의 라이프스타일을 결정짓는 시간입니다. 문화가 숨쉬는 당신의 밤을, 언젠가 제게 다시 맡겨주실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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