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역사재단 ‘신찬성씨록’ 발간
왕권-지배계층 씨족지 집성… 역주 통해 한국계 새로 밝혀
한반도계 이주민 정착 과정 등 한국 고대사 외연 확장에 도움
9세기 초 일본 주류 씨족의 약 26%가 한국계였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삼국시대를 전후해 한반도에서 건너간 이른바 도래인(渡來人)의 후예 상당수가 천황제 국가 지배체제의 한 축을 이룰 정도로 융합된 존재였다는 것이다.
동북아역사재단이 최근 펴낸 ‘신찬성씨록(新撰姓氏錄) 역주본(譯註本)’(사진)에 따르면 당시 사실상 일본 왕권 및 지배계층을 구성한 씨족 1182씨(氏) 가운데 313씨가 한반도에서 건너간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전쟁, 권력투쟁, 자연재해 등에 따라 신천지를 찾아 이동했거나, 대(對)일본 외교 및 정치적 목적으로 파견돼 정주하게 된 한국계의 후손이 대부분이다.
신찬성씨록은 헤이안(平安)시대를 연 간무(桓武·재위 781∼806) 천황이 799년 편찬을 명령해 815년 완성된 계보서다. 옮긴 수도인 헤이안쿄(교토·京都)와 기내(畿內·왕궁 중심의 특별구역으로 지금의 수도권)에 거주하는 씨족 1182씨의 계보를 기록했다. 8세기 말 나라(奈良)시대의 정치적 혼란 속에서 헤이안 천도를 단행한 간무천황이 주요 씨족의 계보를 장악해 왕권과 지배질서를 강화하고, 사회 안정을 꾀하기 위해 편찬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간무천황은 2001년 당시 일본 아키히토(明仁) 천황이 “간무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續日本紀)’에 기록돼 있어 한국과의 인연을 느낀다”고 말해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이 책은 천황가의 후손임을 주장하는 씨족(황별·皇別), 일본 신화의 신들이 원조라고 주장하는 씨족(신별·神別), 외국계 씨족의 후손인 제번(諸蕃)으로 구성돼 있다. 제번에서 한국계 씨족은 백제 104씨, 고구려 41씨, 신라 9씨, 임나 9씨 등 163씨이고 중국계 씨족은 한(漢) 163씨다. 그동안 한국계 씨족은 이 163씨로만 알려졌다.
그러나 연민수 전 동북아역사재단 역사연구실장(63)을 책임자로 하는 연구팀(김은숙 한국교원대 명예교수, 이근우 부경대 사학과 교수, 서보경 한성대 인문과학연구원 특임교수, 박재용 충남역사문화연구원 연구실장)이 2014년부터 7년간 신찬씨성록과 ‘일본서기’를 비롯한 이전의 사서 등 옛 자료를 대조, 검증한 결과 중국계 163씨 가운데 150씨가 한국계였음이 밝혀졌다. 한국계 씨족들이 한나라나 진(秦)나라 계통의 후손이라고 참칭한 것이었다.
연 전 연구실장은 “당시 일본 조정은 한국계 등 재능 있는 도래인의 후손을 중용해 이른바 다국적 관료군을 형성했다”며 “이 책은 고대 일본의 한국계 씨족사 연구는 물론 한국 고대사의 외연을 넓히는 데도 유용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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