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공항, 옛 지명에서 공항 터 예언 많아
지명 인연 작은 공항, 이용률 매우 저조
동남권 신공항 건설 후보지를 놓고 부산·경남 지역은 물론 정치권이 들끓고 있다. 공항 건설은 지역 경제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내년으로 예정된 부산시장 보궐선거의 표심도 크게 자극받을 수 있다. 특히 부산시는 정부가 신공항 후보로 기존의 김해공항 확장안 대신 가덕도 신공항 건설에 무게를 싣는 분위기에 한껏 들떠 있는 모양새다.
풍수에서는 항만, 공항, 역 등을 통칭해서 득수처(得水處·물을 얻는 곳)로 본다. 물길, 즉 수(水)는 재물의 의미다. ‘수관재물(水管財物)’이라는 말도 있다. 이런 곳에서 경제적 번영과 부의 축적이 쉽게 이뤄진다는 뜻이다.
이는 현대 도시공학적인 관점에서도 일정 부분 타당하다. 공항이 대표적이다. 하늘의 물길인 ‘천로(天路)’를 따라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공항은 현대사회에서 가장 주목받는 물류거점이다. 공항은 안전이나 소음 등을 고려해 도심에서 비교적 멀리 떨어진 곳에 세워진다. 하지만 인근 지역 도시에 큰 영향을 미친다. 지자체들이 너도나도 공항을 유치하려는 이유도 막대한 경제적 파급 효과를 기대하고 있어서다.
공항은 자연의 작품인 바다나 강과는 달리 사람의 의지가 개입한 ‘인작(人作)’이다. 따라서 공항은 사람이 땅의 기운을 개조해 만든 최고의 인위적 명당이라고 할 수 있다.
● 용, 기러기, 태양 등 담은 지명, 예언된 공항 터
공항은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고 국가 안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중앙정부 차원에서 입지를 정하고, 건설하고, 관리한다. 특히 입지 선정 과정에서 경제적 환경적 교통적인 요소 등을 두루 따지게 된다.
그렇게 복잡하고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선정된 국내 공항들을 보면 대개 땅 이름에서 공통점이 발견된다. 대체로 예전부터 하늘(天), 날짐승(鳥), 움직임(陽), 흐르는 물(水) 등의 뜻을 지닌 마을이름을 사용해오던 곳이다. 이런 지명과 무관한 곳에 세워진 공항은 아쉽게도 쇠퇴하거나 적자에 허덕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국내 최초 공항은 1916년 일제가 군용 비행장으로 조성한 서울 여의도공항이다. 하지만 종합적인 의미에서 제대로 된 공항을 고른다면 김포공항이 첫손에 꼽힌다. 1939년 너른 평야지대에 3개의 활주로를 갖춘 비행장으로 시작한 김포공항은 광복 후인 1958년 국제공항으로 지정됐다. 이후 2001년 인천국제공항이 개항할 때까지 대한민국 하늘길의 관문으로서 맹활약했다.
김포공항 일대의 옛 지명을 보면 이곳이 하늘 물류기지로 바뀔 것임을 선조들이 예견한 것처럼 보인다. 고려 때부터 이곳은 양천(陽川)으로 불렸다. 풍수에서는 움직이지 않는 산을 음(陰)으로, 움직이는 물은 양(陽)으로 구분한다. 양천은 움직이는 ‘양’에다 유동성을 뜻하는 ‘천(川)’까지 더했으니, 이동과 물류의 극대화가 이뤄지는 곳임을 암시한 셈이다. 땅 이름이 공항 터로 부합한다는 의미다.
강원도 양양(襄陽)군 손양(巽陽; 양의 동남방)면의 양양공항도 마찬가지다. 한자어대로 하면 ‘양(陽)이 오르는(襄)’ 곳, 즉 ‘해가 솟아오르는 곳’이다. 여기서 조금 확대하면 앞서 살핀 대로 비행기가 뜨는 곳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한국땅이름학회 배우리 회장은 “양양공항이 들어선 손양면 학포리(鶴浦里)는 ‘학이 날아드는 포구’라는 뜻으로 비행기(학)가 들어설 곳임을 예견한 지명”이라고 해석할 정도다.
김포공항이나 양양공항보다 더 노골적으로 공항이 들어설 곳임을 암시하는 터가 있다. 바로 인천국제공항이다. 인천국제공항 부지는 영종도(永宗島)와 용유도(龍遊島) 2개 섬 사이를 흙으로 메워 만들었다. 과거 소금을 굽던 평범한 섬 마을이 졸지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국제공항으로 변신한 것이다.
공항 조성 당시 풍수가들 사이에서는 이미 ‘영종도는 천혜의 공항터’라는 얘기가 나돌았다. 여러 가지 이유가 거론됐는데 지명(地名)도 포함됐다. 영종도는 고려 때 제비가 많이 살아 자연도(紫燕島·제비섬)로 불리다가 조선 효종 때인 1653년 ‘긴(永) 마루(宗)’라는 뜻의 영종도로 개명됐다. 두 이름에서 비행기(제비)와 활주로(긴마루)를 연상할 수 있다.
영종도와 이웃한 용유도는 말 그대로 ‘용이 노니는 섬’이다. 항공기가 없던 시절 날아다니는 것을 표현할 수 있는 적절한 비유물은 용이다. 또 비행기 배기가스 분출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화염은 용이 입에서 불을 토해내는 모습과 닮았다. 결국 용유도는 비행기가 이착륙할 운명을 타고난 지역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1978년 공군비행장으로 시작해 1990년대 말 국제공항으로 변신한 청주공항도 마찬가지 이유로 화제가 됐다. 당시 언론에서는 청주공항 인근에 비상리(飛上里·청원구 내수읍)와 비하리(飛下里·청주시 강서동)라는 마을이 있어, 비행기가 뜨고 지는 곳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고 보도했다.
청주공항이 들어선 지역은 인근에 문필봉, 삼두봉 등의 산세가 날아가는 기러기를 닮았다고 해서 비홍리(飛鴻里)로 불리던 곳이다. 그러다 일제 강점기 때 비홍 지역 위쪽을 비상리, 중간을 비중리, 아래쪽을 비하리로 불리게 됐다. 날아가는 기러기를 비행기와 연관시켜 해석하는 것 역시 지명풍수(地名風水)로 볼 수 있다.
● 이용률 낮은 무안 원주 군산 등 공항과 지명 인연 작아
현재 국내에는 8개의 국제공항을 포함해 모두 15개의 공항이 있다. 이중 흑자를 기록하는 곳은 인천 김포 김해 제주 공항 정도다. 나머지 공항은 만성 적자에 허덕인다. 특히 원주 사천 군산 포항 무안 공항 등은 올 들어 지난 8월말까지 공항 활주로 이용률이 1%를 넘지 못했다.(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병훈 의원실)
특히 무안공항은 상황이 심각하다. 국제공항 가운데 최근 5년간 당기 손익이 최하위(-618억 원) 수준인데다 올해엔 코로나19까지 겹쳐 개점휴업 상태다. 무안공항은 일제 때 안개가 적게 끼고 산이 별로 없다는 점 등 때문에 군용 비행장으로 선정됐다가 김대중 정부 시절 국제공항으로 바뀌었다. 눈길을 끄는 것은 무안공항이 위치한 무안군 망운면이 비행장과는 무관한 지명이라는 점이다. 이밖에 원주 군산 등도 지명에서 공항과의 인연을 찾기가 쉽지 않다.
땅의 이름만으로 공항의 적정성을 따지는 것은 무리한 해석이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명에는 땅의 형상과 토양의 특징, 역사적인 전통과 풍습, 환경과 기후, 교통과 교역 등 여러 요소를 고려한 선조들의 지혜가 담겨 있기 마련이다. 특히 오래된 지명일수록 그런 경우가 많다. 따라서 마냥 무시할 일만은 결코 아니다.
그렇다면 부산 강서구에 소속된 가덕도는 어떨까. 부산과 거제도를 이어주는 길목의 섬 가덕도는 ‘더덕이 많이 나는 곳’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아쉽게도 전형적인 어촌인 이곳에서 공항이나 비행기를 연상시키는 지명의 역사를 찾긴 어렵다. 현재 가덕도는 건설비용, 이용 인구 등 경제성과 관련해 공항 부지로서 적합한지 논란이 적잖다. 가덕도가 공항으로 변신하기 위해서는 ‘궁합’을 맞추기 위해 지명 비보(裨補·모자라는 것을 보태 채움)를 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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