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플래시100]붉은 간도땅과 푸른 해란강은 우리 동포의 피와 눈물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1일 11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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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2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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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2월 13일 오후 2시경 중국 룽징, 즉 용정(龍井)의 해란강 나무다리를 건너던 25세 청년 최창호가 갑자기 붉은 피를 뿌리며 얼어붙은 강으로 떨어졌습니다. 약 4m 거리에서 날아온 총알이 머리를 관통했던 것이죠. 장날을 맞아 설 용품을 사러 가던 그는 영문도 모른 채 즉사했습니다. 범인은 초소에 있던 중국 군인이었죠. 장난삼아 최창호의 머리를 겨냥해 총을 쏜 것이 분명했습니다. 비무장 주민을 이유 없이 학살한 천인공노할 만행이었죠.

용정을 비롯해 간도(間島)에 거주하는 동포들은 즉각 들고 일어났습니다. 이튿날부터 시민대회를 열어 만행을 규탄하고 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했죠. 비폭력 저항운동이라는 점에서 ‘촛불집회’와 비슷했습니다. 대표 60명을 뽑아 집행위원회를 구성했고 장례식 날인 18일까지 계속 대회를 열었죠. 상인들까지 일제히 가게 문을 닫아 용정 거리는 을씨년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장례식에는 1만여 명의 동포들이 모여 함께 뜨거운 눈물을 흘렸죠.

우리 조상은 두만강 이북을 북간도, 압록강 이북은 서간도로 불렀습니다. 북간도는 지금 옌볜(延邊)조선족자치주 일대라고 보면 됩니다. 1930년 한 중국 매체는 일본 규슈(九州)와 비슷한 크기라고 보도했죠. 우리 영남지방에 해당하는 면적입니다. 예로부터 간도는 이웃 마을이나 마찬가지였지만 청(淸)이 ‘봉금지대’로 출입을 막은 뒤 사냥 벌목 등을 하러 몰래 드나들었습니다. 1712년 세운 백두산정계비의 해석을 놓고 19세기에 세 차례 담판을 벌였으나 결렬돼 국경분쟁이 남아 있었죠. 하지만 1905년 을사늑약으로 우리 외교권을 빼앗은 일제는 1909년 청과 간도협약을 맺어 이권을 챙기는 대신 간도를 넘겨버렸죠.



그 사이 간도의 동포는 30만 명으로 늘어났습니다. 가뭄을 피해 찾아오기도 했고 경작권을 빼앗겨 건너오기도 했죠. 가혹한 총독정치를 벗어나려고 오거나 독립운동을 위해 망명하기도 했습니다. 많은 동포가 황무지를 개간해 벼농사를 짓거나 소작인으로 억척스럽게 생계를 이어갔죠. 하지만 1915년 일제가 중국을 압박해 만몽조약을 체결하면서 간도에서 무역, 거주, 조차권은 물론 영사재판권까지 행사하게 됐죠. 1920년에는 경찰서까지 설치했습니다.

중국 군경은 동포들에게 식량이나 땔감 돈을 강제로 빼앗고 주인을 내쫓고는 집을 막사로 쓰기도 했습니다. 세금이나 벌금은 마구잡이로 거뒀고요. 중국 거지떼까지 동포 마을을 돌아다니며 행패를 부렸죠. 만몽조약 이후에는 한 가지 잘못에 징역형을 중국이 1년, 일본이 또 1년을 부과해 2년 감옥살이를 해야 했습니다. 국기도 2개 장만해야 했고 여관 숙박계도 2번 써야 했죠. 이중국적 사태가 빚어진 겁니다. 일본 토벌군은 독립운동 했다고 총살을 하고 중국 군경은 이유 없이 총질을 했습니다. 마적을 막아달라고 부른 중국 군경은 마적 저리가라 할 정도로 생명과 재산에 손실을 입혔고 일본은 강 건너 불구경 할 뿐이었죠.



이 때문에 시민대회에서는 그동안 당했던 설움이 봇물처럼 터져 나왔습니다. 연단에 오른 한 동포는 “해란강의 너른 물은 우리 동족의 눈물이고 합파고개의 찬바람은 우리 동족의 한숨이며 간도 기름진 땅의 붉은색은 억울하고 비참하게 죽은 우리 동족의 핏빛”이라고 절규했죠. 이번 기회에 일본에서 벗어나자는 ‘탈적(脫籍)운동’을 거론하고 중국에 귀화하자는 목소리까지 냈습니다. 동포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려는 자치권을 얻기 위한 명분이었죠.

동아일보는 2월 15일자에 최창호 총살 기사를 처음 내보낸 뒤 간도지국으로부터 특별전보를 받아 이 문제를 연일 기사화했습니다. 사설도 네 차례 실어 여론을 불러일으켰고 3월 29일자부터는 ‘간도 조선인의 업원과 주민대회의 시말’을 15회 연재했죠. 하지만 이러한 연대감에도 불구하고 이후에도 나라 잃은 간도 동포의 깊은 상처는 덧나기만 했습니다.

이진기자 leej@donga.com

과거 기사의 원문과 현대문은 '동아플래시100' 사이트(https://www.donga.com/news/donga100)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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