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름해지면 학교 뒤쪽 골목길 ‘종로매점’ 앞 차 밑으로 길고양이 몇 마리 기어들어갔다. 웅숭그리듯 앉아 구멍가게를 주시한다. 가게 창으로 새 나오는 불빛이 이들의 실루엣을 드러낼 때, 고경원 야옹서가 대표(45·사진)는 좋았다.
“가게 할머니가 나와서 음식을 챙겨주길 기다리는 고양이들이 인상적이었어요. 저도 먹을 것을 챙겨줬죠.”
야옹서가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고양이 책만 전문으로 낸다. 최근 ‘말괄‘냥이’ 삐삐’(글·사진 박단비)를 펴낸 고 대표를 2일 서울 종로구 카페 이마에서 만났다.
고 대표는 국내 ‘고양이 작가 1세대’로 꼽힌다. 길고양이에 ‘꽂혀’ 2002년 한 웹진 기자로 일하면서 디지털카메라로 길고양이를 찍고 고양이를 아끼는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2007년 낸 첫 길고양이 사진 에세이 ‘나는 길고양이에 탐닉한다’는 6쇄나 찍었다.
“일반인 머릿속의 길고양이는 쓰레기봉투를 찢고 사람을 보면 겁에 질려 도망가는 ‘무법자’ 느낌이죠. 그런데 길고양이들이 사는 공간을 찾아가보면 엄마가 새끼를 돌보고, 먹을 것 놓고도 동료끼리 줄서서 기다려요. 우스우면서도 귀여운 이들이 사람과 같이 살아간다는 것을 사진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어요. 눈을 맞춰보면 생각이 달라질 거라 생각했죠.”
쓰고 싶은 이야기는 많은데 혼자 다 쓰기에는 한계가 있어 책을 내보자고 생각해 잡지사를 퇴직하고 2017년 7월 출판사를 열었다. 첫 책은 제주도로 현실 도피하듯 떠나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하던 여성이 하얀 길고양이를 만나 서로에게 가족이 돼주고 상처를 치유해주는 기록 ‘히끄네 집’이었다. 한 달 만에 5쇄를 찍고 1만5000부가 나갔다.
야옹서가는 ‘말괄‘냥이’ 삐삐’처럼 큰 고양이를 입양해 키우는 ‘성묘(成猫)’ 이야기, 아이와 고양이를 같이 키우면서 사는 모습을 다룬 ‘육아·육묘(育猫)’ 이야기, 그리고 고양이 사진집을 낸다.
“고양이가 피사체로서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대상이라는 사실에 더해 사람과 살아갈 때의 기쁨 슬픔 문제들을 다같이 보자는 뜻에서 책을 만들고 있어요. 고양이의 생로병사 중에서 ‘로병사(老病死)’는 생각을 잘 안 하시죠. 그걸 감당할 자신이 없다면 고양이 입양은 보류하는 게 맞지 않나 싶어요.”
고양이가 버려지는 이유 중에는 결혼 임신 출산이 있다고 한다. 고 대표는 “아이 낳을 텐데 무슨…” “털 날리는데…” 같은 배우자나 배우자 가족의 반대를 설득할 근거를 책으로 만들고도 싶었다. 올 10월 펴낸 ‘가장 보통의 가족’(글·사진 김동건)은 수의사가 아이와 고양이를 같이 기르는 이야기다. 이달 말에는 고양이의 말기 간호와 임종, 그리고 사후를 맞는 마음의 준비를 가르쳐주는 만화책을 낸다.
“고양이는 종(種)이 다른 가족이에요. 맞아들이는 데 많은 고민과 준비가 필요하죠. 입양이 너무 쉬우면 안 돼요. 고양이 한 마리를 키우는 데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 그런 정보를 알려주는 데 책만 한 것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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