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걷고, 야경만 비추는데… 15회 만에 누적조회 560만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16일 03시 00분


카카오TV ‘밤을 걷는 밤’
가수 유희열 홀로 ‘잔잔한 산책’
대본도 없어… 혼잣말이 인기 비결
“코로나 거리두기도 영향” 분석도

‘밤을 걷는 밤’에서 유희열은 산책로를 걷다 서울의 야경에 감탄하며 혼잣말을 내뱉곤 한다. 카카오TV 제공
‘밤을 걷는 밤’에서 유희열은 산책로를 걷다 서울의 야경에 감탄하며 혼잣말을 내뱉곤 한다. 카카오TV 제공
어두운 밤 서울의 거리를 걷는다. 출연자는 단 한 명, 가수 유희열(49)뿐이다. 자신이 어릴 적 살던 종로구 청운효자동의 익숙한 언덕을 오르기도 하고, 생전 처음 용산구 후암동 해방촌 거리를 걷기도 한다. 홀로 산책하고 서울의 야경만을 비추는 심심한 방송을 누가 볼까 싶지만 올해 9월 시작한 뒤 15회 만에 누적 조회수 560만 회를 넘겼다. 카카오TV의 예능 프로그램 ‘밤을 걷는 밤’ 이야기다.

출연자도, 내레이션도 없는 이 잔잔한 산책의 인기 비결은 ‘감성’이다. 카메라는 오르막길을 오르다 숨이 찬 노모(老母)의 등을 슬며시 밀어주는 딸의 모습을 멀찍이서 찍고, 유희열은 비가 쏟아질 땐 “소리가 괜찮다”고 감탄한다. 이는 ‘감성 변태’라는 별명이 붙은 유희열의 기민한 관찰력 덕이기도 하다. 배우 한지민이 출연한 한 회를 제외하곤 토크가 없지만 사람들은 유희열의 혼잣말에 귀를 기울인다.

‘연출 없음’이 가져온 효과라는 분석도 있다. 프로그램의 기획안은 “서울의 밤을 걷는다”는 단 한 줄뿐이다. 각 회마다 “오늘은 이곳을 걷는다”는 것만 정할 뿐 대본도 없다. 조명도 쓰지 않는다. 가끔 무엇인가를 비춰야 할 때면 유희열이 스마트폰의 조명을 켜는 정도다. “산책이라는 건 길을 잃어야 한다”며 샛길로 빠지기도 한다. 슈퍼마켓 앞을 걷다 뽑기가 하고 싶어지면 “지갑이 없다”며 제작진의 돈을 빌릴 정도로 리얼리티를 중요하게 여긴다.

코로나19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홀로 하는 산책에 대한 수요가 높아졌다는 것. 프로그램을 제작한 문상돈 PD는 “현대인이 여가 시간에 뭘 해야 할까 고민하다 가장 하기 쉽고, 좋은 게 걷기라고 생각했다”며 “서울은 걸어 다니면 세세하게 많은 걸 볼 수 있는 도시”라고 했다.

편집도 스마트폰에서 보기 편하게 기존 방송 기준인 가로가 아니라 세로 화면으로 했다. 시청자들이 이어폰을 꽂고 거리를 걷는 것처럼 느끼도록 음향에도 신경을 썼다. 스마트폰은 TV와 달리 사람마다 하나씩 지니고 있어 사색에 빠질 만한 거리의 시각과 청각을 구현하는 게 중요했다.

색다른 시도를 할 수 있었던 건 플랫폼의 특성도 있다. 이 프로그램을 제작한 카카오M이 모바일에 최적화된 콘텐츠를 선보이면서 기존 방송계와는 차별화를 꾀했다는 것이다. 한 방송사 관계자는 “기존 방송사들은 인력과 예산을 많이 투입하는 큰 프로젝트로 성공하려는 경향이 강해 ‘밤을 걷는 밤’처럼 조용하고 감성적인 아이템은 다루기 쉽지 않다”며 “스마트폰이라는 새 플랫폼에 맞춰 프로그램이 변화한 사례”라고 말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카카오tv#유희열#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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