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에너지 원할땐 소나타 1번 들어보세요”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2월 21일 03시 00분


한국인 최초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전집 낸 백주영-이진상
11개 멀티채널 입체음향 녹음
2채널 스테레오 앨범에 담아
때론 달뜬 열기로, 때론 도발적으로
귀를 잘근잘근 씹는 쾌감 근사

백주영(바이올린·오른쪽)과 이진상(피아노)이 협연한 국내 첫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전집 앨범. 프레스토아트 제공
백주영(바이올린·오른쪽)과 이진상(피아노)이 협연한 국내 첫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전집 앨범. 프레스토아트 제공
위태위태하게 열화상 감지기에 걸릴 듯한 미열이 있다. 약간의 혼미함이 느껴질 정도로 달아오른다. 바이올리니스트 백주영(서울대 교수)과 피아니스트 이진상(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이 한국인 최초로 내놓은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전집(소니뮤직)이 그렇다. 물론 9번 ‘크로이처’는 마약 같은 도취 없이는 연주할 수 없다는 곡이다. 한데 다른 곡들도 그렇다. 예민하고 민감하게 은은한 열기를 뿜으며, 약간씩 재촉하듯 달려 나간다.

“악보를 살펴보면, 베토벤은 역시 피아니스트였죠.”

최근 가진 음반 발매 기념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백주영은 말했다.

“화성 진행 등 여러 면에서 이 곡들은 바이올리니스트들에게 자연스럽지 못한 진행이 많아요. 하지만 너무 아름답기 때문에 열심히 극복해야 하는 거죠.”

달뜬 열기는 두 악기 모두에서 나온다. 바이올린 파트와 피아노 파트 모두 밋밋한 부분 없이 약간씩 도발적인 기복을 주며 흐른다. 소나타 5번 ‘봄’의 스케르초는 두 파트가 겨루듯이 듣는 이의 귀를 잘근잘근 씹는 쾌감이 근사하다.

녹음은 통영국제음악당에서 톤마이스터(음향감독) 최진이 진행했다. 11개 멀티채널 입체음향으로 녹음해 2채널 스테레오 앨범에 담았다. 듀오 무대로는 약간 큰 공간의 특징 때문인지 악기와 마이크 사이의 적절한 거리감과 공간감, 잔향이 두드러진다. 특히 피아노에 이런 공간적 특징이 강조됐다. 녹음되는 음향을 면밀히 분석한 뒤 연주에 반영한 느낌이다. 여린 부분에서 충분히 투명하고, 기복이 큰 부분일수록 잔향의 쾌감과 공간의 크기가 살아난다.

“녹음 기술 측면에선 수많은 테크놀로지가 반영됐지만, 연주자들은 악보를 대면하며 베토벤의 시간 속으로 다가갔다”고 이진상은 말했다. 장식음의 해석 등 기존의 연주들에 비해 새롭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귀에 들어온다. 소나타 9번 ‘크로이처’ 1악장 제시부가 반복될 때는 피아노의 분산화음도 완전히 다르게 연주한다. 베토벤 당시 연주 전통을 면밀히 연구한 결과일 것이다.

발매와 동시에 가지려던 기념 리사이틀은 내년으로 미뤄졌다. 앨범은 코로나19로 힘든 음악 팬들에게 주는 12월의 선물이 되었다. 백주영은 “긍정적 에너지를 받기 원하는 분에게는 1번, 다가올 봄을 느낄 수 있는 곡으로는 5번, 공연장과 같은 스릴을 느낄 수 있는 곡으로는 9번, 마음의 위로를 얻을 수 있는 곡으로는 10번을 추천한다”고 말했다. 개인적으로는 바이올린의 비중이 크고 첫 곡인데도 완성도가 높은 1번 D장조를 가장 좋아한다고 밝혔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소나타#바이올린#베토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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