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집을 평가하려면 코스 요리를 선택하기보다는 친구들 서넛과 그 식당을 대표하는 단품 요리들을 몇 개 주문하는 것이 좋습니다. 마침 그곳이 노포 화상(華商) 중식당이라면 더할 나위가 없지요. 요즘 아파트 단지 내 중국집들은 짬뽕, 짜장면, 탕수육같이 잘나가는 메뉴 몇 가지만 취급하기 때문에 대량으로 찍어 나오는 공산품 같은 느낌이 듭니다. 게다가 배달 중심인지라 조리시간이 빨라야 하고 ‘단짠’의 조화가 생명처럼 됐습니다. 제가 즐겨 보는 유튜브 채널 중에 전국의 유명 중식당을 소개하고 평가하는 흥미 만점의 방송이 있습니다. 그 유튜버는 짬뽕을 중심으로 맛 평가를 하고 식당의 대표 요리를 보조 기준으로 삼더군요. 저라면 무슨 요리를 기준으로 잡을까 고민을 해봤습니다. 아무래도 전통 조리법을 지켜서 만든 특정 요리를 먹어본 경험이 많아야 할 터, 그렇다면 망설일 것 없이 동파육입니다.
코로나19 이전 시대에 대만 여행을 자주 다녔습니다. 중국 문화 및 음식과 관련한 여행으로 그만한 곳이 없습니다. 갈 때마다 꼭 한 번씩 들르는 곳이 바로 국립구궁(故宮)박물원입니다. 붐비는 곳은 바로 공예품 전시실이고, 압권은 옥으로 조각한 배추, 상아를 투각한 구슬, 올리브 씨로 만든 조각배 그리고 동파육과 싱크로율 100%인 육형석입니다. 이를 본 뒤에 박물관 부속 건물의 중식당에서 동파육을 맛보는 것이 저만의 관람 루틴이지요.
요즘 방송가에서 새롭게 스타로 뜬 교수 겸 중국요리사가 있습니다. 중국과 대만 구석구석을 다니며 여행 프로를 찍더니만, 최근엔 오토바이를 타고 전국 일주를 하며 음식과 사람 사는 이야기를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로 풀어내 시청자들을 휘어잡았다지요. 중국 역사와 문화에 정통한 배화여대 신계숙 교수입니다. 그에게 여러 번 식사 초대를 받았는데 매번 빠지지 않았던 요리가 동파육이었습니다.
소동파가 전한 동파육 조리법은 비계와 살이 절묘하게 물결을 이룬 삼겹살 선택부터 시작입니다. 반드시 껍질이 붙어 있어야 하고, 한 덩어리를 대략 70g 정도로 썰어 끓는 물에 넣고 기름을 뺍니다. 두꺼운 자기로 된 솥이 가급적 좋고, 껍질을 아래로 향하게 둬야 한다는군요. 그리고 황주와 간장, 설탕, 생강, 팔각, 계피를 넣고 물을 넣습니다. 솥뚜껑을 덮고는 밀가루 반죽으로 뚜껑 주변을 봉하는데 대개 김이 빠져나가는 작은 구멍은 그대로 남겨둬야겠지요. 그 다음이 중요한데, 충청도 출신 신 교수 같은 ‘은근과 끈기’입니다. ‘약한 불로 뭉근하게!’가 바로 동파육의 핵심인 것이죠.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숫자인 ‘8’시간이 좋다는데, 손님은 음식 기다리다 지칠 것이고, 식당도 망하기 딱 좋은 시간입니다. 당연히 일반 중식당에서는 간편하고 빠른 조리법을 나름 갖고 있을 테지만, 주문한 지 10∼20분 이내에 나오는 곳이라면 ‘대략 난감’입니다.
충청도에서 뒤차가 빵빵거리면 하는 우스개가 있습니다. “그리 급하면 어제 출발하지그려!” 마찬가지로 제대로 된 동파육을 맛보려면 잘 아는 중식당 주인에게 하루 전에 주문해야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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