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흔한 마요네즈를 만들어 보면 몇 가지 놀라움을 경험한다. 일단 시중 마요네즈보다 훨씬 고소하고 맛있어 깜짝 놀란다. 마요네즈에 들어가는 재료가 일반 가정 주방에 흔한 것들이라 신기하기도 하다. 계란 노른자에 식초, 오일을 요령껏 섞으면 마요네즈가 완성된다. 식초와 오일은 다름 아닌 물과 기름이다. 물과 기름 같은 연인이나 동료의 관계는 생각만 해도 피곤하지만, 이런 관계가 화해의 시간을 갖고 나면 단순 결합을 넘어 폭발적인 시너지가 날 수도 있다. 섞이지 않을 것 같던 식초와 오일을 묶어주는 유화제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계란 노른자다.
얼마 전 두 외식 전문가의 아름다운 콜라보를 서울 발산역 인근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살아온 방식과 지역도 다르고, 그동안 다룬 식재료에도 연관이 없었다. 굳이 공통점을 찾으면 각자의 식재료를 몇십 년 동안 지독히 파고들었다는 점일까.
박규환 씨는 서울 마장동에서 고기 발골과 정형을 시작해 유명 갈비집에서 내공을 다진 식육 전문가다. 고기 선별과 요리에 남다른 식견을 가지고 저렴한 가격에 맛 좋은 한우를 선보이는 고기 체인점의 대표다. 그가 고깃집에서 먹을 맛있는 국수를 고심하던 중 지인의 소개로 우연히 간장과 기름으로 비빈 제주도 소면국수를 맛보게 됐다. 오랜 외식사업의 경험을 지닌 그는 국수 맛을 보자마자 ‘이거다!’라고 무릎을 쳤다. 이 단순하지만 강력한 국수를 만든 이는 제주시에서 제주향토음식 전문점으로 소문난 낭푼밥상의 양용진 오너 셰프였다. 그의 내력도 한‘소설’ 하는데, 제주향토음식 김지순 명인의 아들로 모자(母子)가 가장 제주다운 음식 보존에 평생을 걸고 살아가고 있다. 간장기름국수는 어릴 적 할머니가 양 셰프에게 만들어 주던 집안 국수를 재현한 것이다. 무, 양파, 마늘, 대파 등 제주 텃밭 채소를 달인 채수(菜水)에 간장을 넣고 거기에 채소기름을 사용하여 비빈 국수다. 이는 뜨끈뜨끈 갓 지은 밥에 참기름과 간장만 넣어도 꿀맛이었던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단순해 보이지만 마음까지 든든해지는 국수다.
더 재미있는 것은 두 사람의 만남 이후였다. 간장기름국수 이외에 제주산 돼지 연구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제주 통삼겹을 1차로 구워 숯 향이 배도록 하고, 찬물에 담갔다 꺼내 육즙을 보호하며 24시간 이상 숙성을 한 후 고객의 테이블에서 최종적으로 굽는다. 덕분에 시간이 지나도 고기가 마르지 않고 촉촉하며 쫀득하다. 이름하여 조선시대 선비들이 눈 오는 날 쇠고기를 찾아 즐겼다는 풍속인 ‘설하멱적(雪下覓炙)’에서 따온 ‘설하멱돈(雪下覓豚)’이라는 새로운 돼지고기 요리를 탄생시켰다.
다른 지역과 분야의 두 사람은 마요네즈의 식초와 오일처럼 공통분모가 없었다. 간장기름국수가 매개되고 장인의 집요함이 유화제가 되어 이들은 수제 마요네즈처럼 누구에게나 편하면서도 남다른 미각 체험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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