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쓰는 말들 가운데는 누군가에게 상처와 아픔을 주는 말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미망인(未亡人)’이 아닐까 싶다.
이 말, 이전에는 ‘아직 따라 죽지 못한 사람이란 뜻으로, 남편이 죽고 홀로 남은 여자를 이르던 말’이다. ‘춘추좌씨전’의 장공편(莊公篇)에 나온다. 국립국어원은 이것을 ‘남편을 여읜 여자’로 풀이를 바꾸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이 당사자를 미망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실례가 된다는 각주를 달았다.
뜻풀이를 바꾼 건, 늦었지만 잘한 일이다.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남편이 죽었으니 따라 죽어야 한다고? 얼토당토않다.
원래 ‘미망인’은 돌아가신 분의 부인이 스스로를 낮춰 부르던 겸양어(謙讓語)이다. 그러니까 남편을 여읜 여성이 남편을 어서 따라가고 싶다는 애끊는 심경을 나타낸 것이다. 이러한 말을 아무 생각 없이 2인칭, 3인칭으로 써선 안 된다.
애도하는 기간에 홀로된 배우자를 언급해야 할 땐 “돌아가신 아무개의 부인 누구께서…”라고 말하면 된다.
요즘 신문 광고의 부고란을 보면 미망인 대신 ‘부인’이라고 쓴 걸 간혹 볼 수 있다. 미미한 수준이지만 인식의 변화가 시작됐음을 보여주는 진일보한 모습이다.
그러고 보니 무심코 썼는데 성차별적인 말도 많은 듯싶다. ‘미혼모(未婚母)’와 ‘편부모(偏父母)’가 그렇다. 이 두 낱말엔 당사자에 대한 사회적 차별의 시각이 담겨 있다. 그래서일까, 인터넷 웹사전인 우리말샘에는 미혼모의 대칭 개념으로 ‘결혼을 하지 않은 몸으로 자녀가 있는 남자’를 뜻하는 ‘미혼부(未婚父)’와 편부모를 대신한 ‘한부모’가 올라 있다. 얼마 전 일본 출신 방송인 사유리 씨의 출산 소식으로 화제를 모았던 ‘자발적 비혼모(非婚母)’도 있다. 결혼은 하지 않고 애인 또는 정자은행을 통해 아이만 낳아 기르는 경우를 말한다. 미혼모에 비해 여성 자신의 선택을 강조한다.
이 중 한부모는 말맛이 좋아선지 편부모를 제치고 꾸준히 언중의 입에 오르내린다. 이쯤이면 언중의 말 씀씀이를 존중해 표제어로 삼는 걸 검토해야 하지 않을까.
전문직 여성을 불필요하게 강조하는 ‘여류(女流)’도 어찌 보면 차별적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시대가 변했기 때문이다. 요즘 여성들은 우리 사회 모든 분야에서 남성과 동등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러므로 여성이란 사실을 내세울 필요가 없는 경우에까지 ‘여류’를 쓸 필요는 없어 보인다.
신문과 방송 등에서 한때 즐겨 썼던 ‘처녀출전’ ‘처녀우승’ 등 표현은 어느 샌가 자취를 감추었다. 이 낱말 속에 들어있는 ‘처녀’가 여성의 성적·신체적인 면을 이용한 차별적 표현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첫 출전’ ‘첫 우승’, 간단하고 분명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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