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맘때면 1990년대 초 프랑스에 공부하러 갔을 때 먹었던 바칼랴우가 생각납니다. 친하게 지내던 포르투갈 출신 부부가 초대한 연말 저녁 식사 때 처음 먹었는데 당시만 해도 그런 조리법의 생선 요리는 먹어본 적이 없어 인상 깊었습니다. 프랑스에는 유난히 포르투갈에서 이민 온 분들이 많습니다. 이분들은 연말연시 가족이나 고향분들과 어울려 고향 음식을 해 먹는데 바칼랴우를 많이 드신다고 하더군요.
바칼랴우는 우리로 치면 대구입니다만, ‘염장하여 말려놓은 식재료’ 대구만을 바칼랴우라고 부릅니다. 말리면 보존성이 뛰어나고 부피에 비해 무게가 나가지 않아 운반하기에도 좋아 옛날부터 훌륭한 교역 품목이었습니다. 대구는 한류성 물고기라 유럽에서는 주로 북해에서 많이 잡힙니다. 따라서 근대 이전에는 주로 바이킹, 근대에 들어서는 영국인에 의해 유럽으로 팔려나갔는데 일찍부터 서민을 위한 저렴한 단백질 공급원으로 자리 잡으며 ‘바다의 빵’ 역할을 톡톡히 해왔습니다.
사실 대구는 수분이 많고 지방이 별로 없어 그냥 날생선으로 먹기에는 퍽퍽하고 밋밋하며 별맛이 없는 생선입니다. 꾸덕꾸덕 말리거나 염장을 하면 수분이 빠져나가고 감칠맛이 올라오지요. 영양가도 더 풍부해지고요. 우리는 대개 찜을 해서 밥에 곁들여 먹지만, 유럽에선 다양한 방식으로 조리해 주식으로 먹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바칼랴우를 나라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여기는 포르투갈에서는 수백 가지 조리법이 있다고 합니다. 포르투갈 도루의 와이너리를 방문했을 때 수십 가지 바칼랴우 요리를 대접받은 적도 있습니다. 포르투갈에서는 바칼랴우, 스페인에서는 바칼라오, 프랑스에서는 모뤼, 이탈리아에서는 바칼라 등 이름만 다를 뿐이지 유럽의 해안지역에서 광범위하게 사랑받는 음식입니다.
국내에선 바칼랴우를 메뉴에 올려놓은 레스토랑이 많지 않은데 그중 가장 인상 깊은 곳을 소개해 드립니다.
서울 서초구 방배동 이수역 부근의 ‘시스트로’입니다. 이곳의 바칼라는 개업 이래 지금까지 확고한 시그니처 메뉴로 자리 잡은 대표 요리입니다. 이탈리아에서 많이 먹는 형식의 바칼라를 토대로 재해석해 레시피를 구성했다고 합니다. 대구와 감자를 따로 우유에 삶아서 반반 섞은 다음 생크림과 그라나파다노를 섞어 그라탱처럼 겉을 살짝 구워 만듭니다. 폴렌타를 곁들이는데 이 폴렌타야말로 이탈리아 북부에서 많이 먹는 향토음식이기도 합니다. 옥수수 가루에 물을 넣어 걸쭉하게 죽처럼 쑤었다가 굳힙니다. 작은 크기로 잘라 냉동시킨 후 바칼라가 서빙이 될 때 튀겨서 사이드 디시로 곁들입니다. 감자가 섞여 부드럽고 촉촉한 ‘안 맛’과 약간 까슬한 대구살, 겉에 올린 그을린 치즈가 짭짤하면서도 고소하게 어울리는 ‘바깥 맛’의 결합이 아주 훌륭합니다. 그 결합의 중간매체는 당연히 폴렌타가 되겠습니다. 대부분의 샤르도네 품종 와인과 잘 어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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