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빛만 보아도 알아요[손진호의 지금 우리말글]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월 24일 08시 19분


동아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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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처’란 말이 있다. ‘눈동자에 비치어 나타난 사람의 형상’을 말하는데, 동자부처라고도 한다. 장승욱 씨는 저서 ‘재미나는 우리말 도사리’에서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했으니,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의 창에 자기 자신을 비추어 보고, 그때의 오롯한 마음이 어찌 부처의 마음과 다를 것이냐고 했다. 이해할 듯도 싶다. ‘진실한 사랑은 눈을 보면 안대요’라는 노랫말이 있듯 눈빛만 봐도 무슨 말을 하려는지, 진심이 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말은 눈으로 많은 얘기를 한다. ‘눈썰미’와 ‘눈도장’, ‘눈총’과 ‘눈독’ 등이 대표적이다. 눈썰미는 한두 번 보고 그대로 해내는 재주다. ‘귀썰미’도 있는데, 한 번 들은 것을 그대로 흉내 내는 재주를 말한다. 허나 아쉽게도 이 말을 아는 이가 그리 많지 않다. 그런가 하면 사람들은 출석했다고 하는 대신 ‘눈도장’을 찍었다고도 한다.

눈총은 독기를 띠며 쏘아보는 시선이다. 명절 때 조카 등에게 취업, 결혼 등 민감한 문제를 눈치 없이 던지다간. 어김없이 받는 눈화살이다. ‘눈독을 들이다’의 눈독은 욕심을 내어 눈여겨보는 기운이다. ‘눈결’은 눈에 슬쩍 뜨이는 잠깐 동안을 이른다.

마음의 전령이기도 한 눈의 세계엔 이 밖에도 재미난 낱말들이 많다. ‘백안시(白眼視)’ ‘청안시(靑眼視)’가 그렇다. 백안시는 남을 업신여기거나 무시하는 태도로 흘겨보는 걸 말하는데, 중국의 진서(晉書) ‘완적전(阮籍傳)’에 나온다. 진나라 때 죽림칠현의 한 사람인 완적이 반갑지 않은 손님은 백안(白眼)으로 대하고, 반가운 손님은 청안(靑眼)으로 대한 데서 유래한다. 백안은 흘겨볼 때 흰자가 많이 보이는 데서 생겨난 낱말이다. 백안시에서 얼굴을 더 틀어 상대를 ‘안계(眼界)’, 즉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범위 밖으로 밀어내면 도외시(度外視)나 무시(無視)가 된다. 이마저도 용납 못해 얼굴을 돌려버리면 서로 시기하고 미워하는 ‘반목(反目)’과 적으로 여기는 적대시(敵對視) 상태가 된다. 이때쯤이면 가시눈, 도끼눈, 송곳눈이 활개 친다. 하나같이 적의를 가지고 날카롭게 쏘아보는 눈이다. 이와 달리 청안시는 남을 달갑게 여겨 좋은 마음으로 보는 것을 말한다.

누가 뭐래도 눈의 세계에서 돋보이는 낱말은 ‘눈꼬리’가 아닐까 싶다. 한때 ‘눈초리의 잘못’으로 묶여있었지만 언중의 말 씀씀이에 힘입어 표준어가 됐다. 한번 생각해보라. ‘눈꼬리’와 ‘눈초리’가 같은 말일 수는 없다. 눈꼬리는 볼 수 있지만, 눈초리는 느낄 수만 있으니 말이다.
뉴시스

‘코와 입을 가려도 따스한 눈웃음은 가려지지 않아요.’ 서울도서관 꿈새김판의 글귀처럼 한 번이라도 더 서로에게 미소를 보내자. ‘눈마중’으로 만나고 ‘눈배웅’으로 헤어졌으면 하는 요즘이다.

손진호 어문기자 songba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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