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은 듯 다른 빛깔을 가진 두 발레리노가 더 높게 비상할 날개를 얻었다. 완벽주의자 허서명(31)과 몽상가 박종석(30)이 올해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로 승급했다. 허서명이 모든 무대마다 ‘흔들리지 않는 편안한’ 춤으로 열정적인 오렌지색 에너지를 내뿜는다면, 남다른 태를 뽐내는 박종석은 몽환적이고 짙은 연기로 보랏빛을 떠올리게 하는 무용수다. 향후 발레단을 이끌 두 또래 주역을 20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만났다.
이들이 수석무용수 타이틀을 단 건 2주가 채 되지 않았다. 휴가 중 기사로 승급 소식을 접하고 먼저 느낀 감정은 얼떨떨함이었다. 늦잠을 자느라 발레단 관계자나 지인의 축하 전화도 못 받았다. “그날따라 부재중 전화가 많아 이상했다”던 이들은 “누구 한 명이 승급했더라도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기쁘면서도 마음이 무겁다”고 입을 모았다.
최근 몇 년 동안 국립발레단은 매년 한 명만 수석무용수로 승급했다. 게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지난해는 무대에 설 일이 적었던 텅 빈 한 해였던 터라 기대감도 적었다. 발표가 있기 전 두 사람도 ‘누군가는 되겠거니’ 하는 편안한 마음이었다고.
강수진 국립발레단장은 “안정적이고 흐트러짐 없는 연기”를 선보이는 허서명과 “테크닉과 연기력 모든 방면에서 최고의 기량을 선보일” 박종석의 가능성을 보고 승급을 결정했다.
선화예중 시절부터 함께 놀고 연습하던 이들은 서로 “형” “종석아”라고 부르는 막역한 사이다. “곧 보는데 굳이 축하는…”이라며 발표 후 축하 인사도 생략했다. 진지한 발레 얘기는 꺼리는 ‘상남자’들. 상대의 장점을 꼽아 달라는 질문에 “부끄럽다” “뭐, 다 닮고 싶다”며 얼버무리다가도 곧 속내를 드러냈다. 허서명은 “종석이는 언제나 늘 주인공 같은 느낌이다. 라인, 분위기가 정말 좋다”고 했다. 박종석은 “안정적 연기, 유연성, 점프력, 떨지 않는 정신력까지 정말 많이 닮고 싶다”고 했다.
두 사람이 걸어온 길과 스타일도 사뭇 다르다. 세종대 졸업 후 2013년 입단한 허서명은 탄탄한 기본기로 최근 몇 년간 주역으로 활약해 왔다. 그는 “주변 사람을 전부 피곤하게 할 정도로 분장, 의상 착용, 연습 시간 등 지켜야 할 개인적 징크스와 루틴이 많다. 다 지켜서라도 항상 완벽한 무대를 꿈꾼다. 그 대신 무대에선 절대 떨지 않는다”고 했다.
2016년 입단한 박종석은 미국 워싱턴발레단, 펜실베이니아발레단과 한국 유니버설발레단(UBC)을 거쳐 2016년 국립발레단에 입단했다. 그는 “외국 발레단을 경험하며 한국 발레단도 전혀 작거나 부족하다고 생각지 않았다”며 “캐릭터의 마음을 늘 고민하면서 예술적 영감을 받으려 한다”고 했다. 잠시 쉴 때면 홀로 훌쩍 낚시를 떠나 머릿속을 비운다.
두 사람은 지난해 처음 선보였던 ‘해적’ 연습에 한창이다. 3월 개막을 앞두고 땀 냄새 나는 작품을 보여주려 애쓰고 있다. 이들은 “몇 달간 ‘경력 단절’ 상태로 쉬다가 오랜만에 무대에 서려니 심장이 뛴다. 국립발레단이라는 브랜드를 위해 더 뛰어오르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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