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공연 앞둔 뮤지컬 ‘팬텀’ 달라진 연습실 풍경은…
하루 3차례 체온체크-명부 작성, 팔벌린 간격 띄어앉고 잦은 환기
배우들, 흥 억누르며 ‘차분한 합창’
“2015년엔 아픈 사람만 마스크 착용… 올해는 빈자리 더 많아지겠지만
무너진 세상에 힘 주고 싶어요”
기구한(?) 운명 속에서도 살아남은 뮤지컬계 유령이 돌아왔다. 뮤지컬 ‘팬텀’은 국내 초연인 2015년에는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로 직격탄을 맞아 일부 지방공연을 취소해야 했다. 큰 파고를 겪고도 흥행에 힘입어 2016년, 2018년 공연을 이어갔지만 올해는 개막(3월 17일 서울 샤롯데씨어터)을 앞두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싸우고 있다.
이전보다 더 거센 파고 앞에서도 유령은 ‘내 고향(Home)’을 부르며 자신의 고향, 무대로 돌아갈 준비에 매달리고 있다. 배우와 제작진이 담담한 듯 치열하게 연습 중인 서울 중구 충무아트센터 연습실 풍경을 들여다봤다.
25일 낮 12시 반이 되자 앙상블 배우들이 하나둘씩 도착했다. 여느 때 같으면 배우들끼리 근황도 묻고 노래도 하며 목을 풀겠지만 이날은 이런 모습을 보기 힘들었다. “체온 36.1도입니다. 명부에 서명해주세요”라는 방역 담당 무대팀 직원의 소리만 들릴 뿐 묘한 적막이 감도는 공간. 한 배우는 “절차가 많아졌지만 연습이라도 할 수 있어 감사하다”고 했다.
무대팀, 제작팀은 일거리가 크게 늘었다. 출연진이 도착하기 한 시간 전부터 장비 점검은 기본이고 환기와 사전 방역작업도 마쳐야 한다. 오전, 오후, 저녁 때마다 세 차례 출입자들의 체온을 점검한다. 무대팀 조감독은 매일 출입인원 명부, 체온 점검 여부, 연습실 창문 환기 횟수 등 방역일지를 작성한다.
연습 시작 10분을 앞두고 모두 도착했다. 배우들이 역할별, 파트별로 다닥다닥 모여 앉던 풍경도 바뀌었다. “옆으로 나란히 팔 벌린 간격으로 띄어 앉으세요.” 방역 담당 직원이 말하자 앙상블 배우들이 각자 의자를 들고 간격을 벌린다. 전동선 제작팀 PD는 “2015년 초연 때는 손소독제를 비치하고 몸에 이상이 있는 일부 배우만 마스크를 썼다. 지금은 아예 차원이 다를 정도로 신경 쓸 일이 늘었다”고 했다.
오후 1시가 되자 김문정 음악감독의 지휘에 맞춰 조심스레 배우들이 입을 뗐다. 감독의 지시, 서로의 노랫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답답하련만 별다른 방법은 없다. 서로의 연주 소리와 목소리에 더 귀 기울일 뿐. 틈날 때마다 무대팀은 창문을 열고 환기 시스템을 가동한다. 끓어오르는 감정과 흥을 조금은 억누르며 ‘차분한 합창’을 끝냈다.
오후 4시가 되자 주역인 ‘에릭(팬텀)’ ‘크리스틴’ 역 배우들이 도착했다. 같은 시간 ‘필립’ 배역의 배우들은 다른 연습실에 있었다. 연습 내용과 중점을 둬야 할 부분이 다르기도 하지만 감염 위험을 최소화하려는 조치다. 초연 때부터 ‘에릭(팬텀)’을 맡았던 배우 카이는 “공연예술이 대화와 교류가 필요한 협동 작업임에도 방역수칙을 지키느라 보이지 않는 거리감이 생긴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소프라노인 ‘크리스틴’ 역의 임선혜 배우 역시 초연 멤버다. 그는 해외 일정 때문에 코로나19 이후 자가 격리를 세 번 했다. 그는 “초연 때 관객들이 마스크를 쓰고 있는 모습을 보고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일까’라며 공연이 끝난 뒤 배우들이 함께 울었던 기억이 있다”며 “올해는 빈자리가 더 많겠지만 ‘무너진 세상에 너의 음악이 되리라’란 문구처럼 힘을 주고 싶다”고 했다.
오후 6시가 되자 공식연습이 끝났다. 불이 꺼져도 방역작업은 끝나지 않았다. 작성한 방역일지를 제작사, 출연진에게 발송하는 게 최종 업무. 몇 시간 동안 침묵을 지키며 연습실 안팎을 드나들던 강은미 무대감독은 “이젠 이런 일들도 다 익숙해졌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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