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잘하면 며느라기(期·시댁에서 인정받고 싶어 하는 시기) 같은 거 슬기롭게 넘길 수 있을 줄 알았다.”
카카오TV 드라마 ‘며느라기’의 주인공 민사린의 대사다. 싹싹한 성격에 예쁨받는 며느리였던 그는 시댁으로 인한 고충에 조금씩 의문을 갖는다.
“명절 때 시댁에 안 갔어요. 완벽한 명절을 보냈죠.”
2018년 상영된 다큐멘터리 영화 ‘B급 며느리’에서 김진영 씨(39)의 대사다. 자기감정을 표현하는 데 거침이 없던 김 씨는 시부모와 다투고 1년 2개월 동안 시댁을 방문하지 않았다. ‘B급 며느리’를 함께 만든 김 씨와 남편 선호빈 다큐멘터리 감독(40)은 ‘며느라기’를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1일 이 부부를 만나 감상을 들었다.
#1화. 사린의 회사 선배가 ‘며느라기’에 대해 설명한다. 사춘기, 갱년기처럼 시집살이에서 인정받고 싶은 시기인 며느라기가 있단다. 김 씨도 2011년 결혼 후 1년간 며느라기 시절을 보냈다. 시어머니는 하루 평균 7통의 전화를 했다. 그래도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김 씨는 “드라마에서처럼 내 시댁 식구 중에도 도드라지게 못된 사람은 없다. 그걸 아니까 관심이라고 여기고 문제 삼지 말자고 생각했다”고 했다.
#4화. 제사가 있던 날, 사린의 남편 구영은 거실에서 술을 마시고 사린과 시어머니만 제사 준비로 바쁘다. 시댁 집은 주방과 거실이 분리돼 있고, 주방도 식사 공간과 싱크대가 문턱으로 나뉘어 있다. 이 세트장은 며느리 시선에서 본 시댁의 갑갑함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선 감독도 영화를 촬영하며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 넓지 않은 집이지만 거실과 주방은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는 것. “어머니와 아내는 부엌에서 싸워 대는데 거실에 있는 사람들은 상황을 모르는 듯 안부 인사를 나누더라고요. 마치 벽이 있는 것처럼 드라마틱하게 구분된 공간이었어요.”
#6화. 사린에게 “먼저 밥 먹는다”는 남편의 문자가 왔다. 사린은 결혼 전 야근하는 자신을 위해 초밥을 사온 남편을 떠올린다. 색 보정으로 과거는 밝게, 현재는 빛바랜 느낌으로 연출됐다. ‘B급 며느리’ 말미에도 신혼 시절 김 씨 모습이 나온다. 김 씨는 이따금 마냥 밝던 그때가 그립단다. 살다보면 사랑이 마모된다는 것쯤은 안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방식과 속도가 있었다. 그런데 3년 만에, 그것도 고부갈등으로 남편과의 유대감이 사라졌다. 김 씨는 “잿빛으로 바뀌는 현실에 대한 느낌을 실감하며 살았다”고 말했다.
#10화. 구영의 여동생인 미영은 시댁 김장을 위해 ‘엄마 찬스’를 쓴다. 힘겹게 배추를 절이며 엄마의 노고를 알게 된다. 선 감독은 명절을 쇠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짜증을 내던 자신의 어머니를 오래도록 기억한다. 당시 어머니는 당신을 ‘선씨 집안의 A급 며느리’로 규정했다. 김 씨는 “우리 모두 어머니들의 양육에 빚지고 살았다. 시어머니의 삶을 존중하고, 저와 시어머니의 다툼을 보며 고통스러웠을 남편의 감정도 이해한다”고 했다. 그렇기에 김 씨는 1년 넘게 시부모와 다퉜음에도 이제는 서로가 어떤 사람인지 받아들이고 실망하지 않게 됐다고 한다.
‘며느라기’ 시청자들도 비슷한 처지에 공감하며 때론 자신의 엄마를 떠올렸다. 종영을 한 회 앞둔 지금 사린이 남편, 시댁과의 갈등을 두고 어떤 결론을 내릴지 궁금해하는 이유다. 김 씨 부부는 자신들의 선택이 정답은 아니라고 했다. 다만 소통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씨는 “서열화된 세대 간 소통 방식 탓에 누군가는 의견과 감정을 무시당하고 갈등 자체가 금기시됐다”면서 “최근 며느리 관련 작품들은 가부장제에 대한 고발을 넘어 더 나은 교감을 추구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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