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라이트 감독의 ‘오만과 편견’(2005년)은 주인공 엘리자베스 베넷이 손에 책을 들고 들판을 거니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영화적 상상력이 필요한 지점에서 감독은 ‘읽는 여자’이자 ‘걷는 여자’였던 엘리자베스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이에 대해 원작소설을 쓴 제인 오스틴의 오랜 팬이자 영화평론가인 저자는 “그녀의 지성뿐 아니라 걷기와 저항이라는 측면에서도 탁월한 선택”이라고 평한다.
책은 오스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공연 등 14개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당대에도 탁월한 풍자와 은근한 유머로 사랑받은 그의 작품들은 시대 변화에 따라 새로운 급진성을 획득했다. 로저 미첼 감독은 영화 ‘설득’(1995년)에서 원작에 없는 설정을 가미해 관객들에게 재미를 선사했다. 오스틴은 원작소설에서 ‘여자는 배에 탈 수 없다’는 당시의 편견을 거부했다. 미첼 감독은 마지막 장면에서 선원의 아내인 주인공 앤 엘리엇을 ‘기다리는 아내’에서 ‘항해하는 아내’로 둔갑시켰다. 오텀 드 와일드 감독의 ‘엠마’(2020년)에서도 주인공 엠마의 캐릭터가 각색됐다. 원작에서 뚜쟁이 엠마는 주변 사람들 중 같은 계층끼리 만나도록 연결해주기 바쁘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2020년의 엠마는 하층 계급에도 차별 없이 다가선다. 원작의 변주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썼다. ‘나는 흔히 쓰는 ‘원작에 충실하다’는 표현에 동의하지 않으며 대사와 이야기를 그대로 옮긴 영화들이 최고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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