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시대에는 공신회맹제가 있을 때마다 어람용 회맹축을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1910년까지 문헌을 통해 전래가 확인된 회맹축은 3건에 불과하다. 1646년(인조 24)년과 1694년(숙종 20) 제작된 회맹축, 1728년(영조 4) 분무공신(奮武功臣) 녹훈 때의 회맹축 등이다.
이 중 영조 때 만들어진 이십공신회맹축의 실물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고, 1646년에 제작된 ‘이십공신회맹축-영국공신녹훈후’(보물 제1512호)는 국새가 날인돼 있지 않다.
따라서 어람용이자 형식상·내용상 완전한 형태로 전래된 회맹축은 이 ‘이십공신회맹축-보사공신녹훈후’가 유일하다.
문화재청은 실물과 관련 기록이 완전하게 남아 있고 24m에 달하는 큰 규모를 갖춘 조선왕실의 문서인 ‘이십공신회맹축-보사공신녹훈후’를 국보로, 사찰목판, 전적·불교문화재 등 12건을 보물로 지정했다고 18일 밝혔다. ‘이십공신회맹축?보사공신녹훈후’(국보 제335호)는 1680년(숙종 6) 8월30일 열린 왕실의 의식인 ‘회맹제(임금이 공신들과 함께 천지신명에게 지내는 제사)’를 기념하기 위해 1694년(숙종 20) 녹훈도감에서 제작한 왕실 문서다.
‘이십공신회맹축-보사공신녹훈후’는 1680년 회맹제 거행 당시의 회맹문(종묘사직에 고하는 제문)과 보사공신을 비롯한 역대 공신들, 그 후손들을 포함해 총 489명의 명단을 기록한 회맹록(), 종묘에 올리는 축문(제사 때 신에게 축원하는 글)과 제문(祭文)으로 구성됐다. 축의 말미에 제작 사유와 제작 연대를 적었고 ‘시명지보(施命之寶)’라는 국새를 마지막으로 찍어 왕실 문서로서 완전한 형식을 갖췄다.
이 회맹축은 17세기 후반 숙종 대 경신환국, 기사환국, 갑술환국을 거치면서 서인과 남인의 정쟁으로 혼란스러웠던 정국을 수습하고 왕권을 강화하고자 당시 정치적 상황을 보여주는 사료로서도 역사·학술 가치가 높을 뿐 아니라, 왕실유물 중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크기로 제작돼 조선 후기 왕실 공예품의 백미(白眉)로서 예술성 또한 우수하므로 국보로 지정할 가치가 충분하다.
또 이번 지정 대상에는 하동 쌍계사 소장 목판 3건이 포함됐다. 지정 대상 중 제작 시기가 가장 빠른 ‘선원제전집도서 목판’(보물 제2111호)은 지리산 신흥사 판본(1579)과 순천 송광사 판본을 저본(底本)으로 해 1603년(선조 36) 조성된 목판으로, 총 22판 완질이다. ‘원돈성불론·간화결의론 합각 목판」(보물 제2112호)은 고려 승려 지눌(1158∼1210)이 지은 ’원돈성불론‘과 ’간화결의론‘을 1604년(선조 37) 능인암에서 판각해 쌍계사로 옮긴 불경 목판으로 총 11판의 완질이다.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 목판‘(보물 제2113호)은 1455년(세조 1)에 주조한 금속활자인 을해자(乙亥字)로 간행한 판본을 저본으로 해 1611년(광해군 3) 여름 지리산 능인암에서 판각돼 쌍계사로 옮겨진 불경 목판으로, 총 335판의 완질이 전래되고 있다.
이밖에 고려 시대 역사와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자료인 ’고려사(高麗史)‘에 대한 가치를 평가해 처음으로 보물 지정했다. ’고려사‘의 보물 지정은 ’삼국사기‘, ’삼국유사‘, ’조선왕조실록‘ 등 우리나라 고대와 조선 시대사 관련 중요 문헌들이 모두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상황에서, 그동안 고려시대를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역사서인 ’고려사‘ 역시 국가지정문화재로서의 평가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새롭게 역사·학술·서지적 가치를 검토한 결과다.
이외에도 ’상주 남장사 영산회 괘불도 및 복장유물‘(보물 제2116호), ’구미 대둔사 경장‘(보물 제2117호), ’지정조격 권1~12, 23~34‘(보물 제2118호) 등이 보물로 지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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