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m 조선왕실 문서 ‘이십공신회맹축’ 국보 지정

  • 뉴시스
  • 입력 2021년 2월 18일 10시 01분


코멘트
조선 시대에는 공신회맹제가 있을 때마다 어람용 회맹축을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1910년까지 문헌을 통해 전래가 확인된 회맹축은 3건에 불과하다. 1646년(인조 24)년과 1694년(숙종 20) 제작된 회맹축, 1728년(영조 4) 분무공신(奮武功臣) 녹훈 때의 회맹축 등이다.

이 중 영조 때 만들어진 이십공신회맹축의 실물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고, 1646년에 제작된 ‘이십공신회맹축-영국공신녹훈후’(보물 제1512호)는 국새가 날인돼 있지 않다.

따라서 어람용이자 형식상·내용상 완전한 형태로 전래된 회맹축은 이 ‘이십공신회맹축-보사공신녹훈후’가 유일하다.

문화재청은 실물과 관련 기록이 완전하게 남아 있고 24m에 달하는 큰 규모를 갖춘 조선왕실의 문서인 ‘이십공신회맹축-보사공신녹훈후’를 국보로, 사찰목판, 전적·불교문화재 등 12건을 보물로 지정했다고 18일 밝혔다.
‘이십공신회맹축?보사공신녹훈후’(국보 제335호)는 1680년(숙종 6) 8월30일 열린 왕실의 의식인 ‘회맹제(임금이 공신들과 함께 천지신명에게 지내는 제사)’를 기념하기 위해 1694년(숙종 20) 녹훈도감에서 제작한 왕실 문서다.

‘이십공신회맹축-보사공신녹훈후’는 1680년 회맹제 거행 당시의 회맹문(종묘사직에 고하는 제문)과 보사공신을 비롯한 역대 공신들, 그 후손들을 포함해 총 489명의 명단을 기록한 회맹록(), 종묘에 올리는 축문(제사 때 신에게 축원하는 글)과 제문(祭文)으로 구성됐다. 축의 말미에 제작 사유와 제작 연대를 적었고 ‘시명지보(施命之寶)’라는 국새를 마지막으로 찍어 왕실 문서로서 완전한 형식을 갖췄다.

이 회맹축은 17세기 후반 숙종 대 경신환국, 기사환국, 갑술환국을 거치면서 서인과 남인의 정쟁으로 혼란스러웠던 정국을 수습하고 왕권을 강화하고자 당시 정치적 상황을 보여주는 사료로서도 역사·학술 가치가 높을 뿐 아니라, 왕실유물 중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인 크기로 제작돼 조선 후기 왕실 공예품의 백미(白眉)로서 예술성 또한 우수하므로 국보로 지정할 가치가 충분하다.

또 이번 지정 대상에는 하동 쌍계사 소장 목판 3건이 포함됐다. 지정 대상 중 제작 시기가 가장 빠른 ‘선원제전집도서 목판’(보물 제2111호)은 지리산 신흥사 판본(1579)과 순천 송광사 판본을 저본(底本)으로 해 1603년(선조 36) 조성된 목판으로, 총 22판 완질이다.
‘원돈성불론·간화결의론 합각 목판」(보물 제2112호)은 고려 승려 지눌(1158∼1210)이 지은 ’원돈성불론‘과 ’간화결의론‘을 1604년(선조 37) 능인암에서 판각해 쌍계사로 옮긴 불경 목판으로 총 11판의 완질이다.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 목판‘(보물 제2113호)은 1455년(세조 1)에 주조한 금속활자인 을해자(乙亥字)로 간행한 판본을 저본으로 해 1611년(광해군 3) 여름 지리산 능인암에서 판각돼 쌍계사로 옮겨진 불경 목판으로, 총 335판의 완질이 전래되고 있다.

이밖에 고려 시대 역사와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자료인 ’고려사(高麗史)‘에 대한 가치를 평가해 처음으로 보물 지정했다.
’고려사‘의 보물 지정은 ’삼국사기‘, ’삼국유사‘, ’조선왕조실록‘ 등 우리나라 고대와 조선 시대사 관련 중요 문헌들이 모두 국보나 보물로 지정된 상황에서, 그동안 고려시대를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역사서인 ’고려사‘ 역시 국가지정문화재로서의 평가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새롭게 역사·학술·서지적 가치를 검토한 결과다.

이외에도 ’상주 남장사 영산회 괘불도 및 복장유물‘(보물 제2116호), ’구미 대둔사 경장‘(보물 제2117호), ’지정조격 권1~12, 23~34‘(보물 제2118호) 등이 보물로 지정됐다.

[서울=뉴시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오늘의 추천영상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