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산을 밤새 달려”…코로나에 산악 괴물된 남자[양종구의 100세 시대 건강법]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2월 20일 14시 00분


산악달리기 왕 김지수 씨

김지수 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이후 산을 타는 트레일러닝에 집중하고 있다. 김지수 씨 제공.
김지수 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이후 산을 타는 트레일러닝에 집중하고 있다. 김지수 씨 제공.

의류 관련 자영업을 하는 김지수 씨(44)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창궐한 뒤 국내 트레일러닝의 최강자가 됐다. 원래 겨울엔 스키와 스노보드, 여름엔 수상스키, 그리고 계절에 관계없이 수영과 마라톤, 사이클 등 다양한 종목을 즐기는 스포츠마니아였는데 코로나19로 실내시설 사용이 금지되고 집합금지가 강화되면서 얻어진 결과다. 매일 달리고 주말엔 산을 타는 트레일러닝에 흠뻑 빠져 살다보니 자연스럽게 실력이 업그레이드됐다.

“예년 같으면 아침에 수영을 하면서 하루를 시작했는데 아직까지 집 주변 수영장은 문을 열지 않아 주로 피트니스센터를 찾아 러닝머신에서 달리거나 야외로 나가서 질주합니다. 전 특정 종목에 올인해 기록을 단축하는 스타일은 아닌데 산을 달리는데 치중하다보니 여러 대회에서 우승하게 됐습니다.”

지난해 6월 경수대간 청광종주 36km, 8월 지리산 화대종주 48km, 10월 울주 나인피크 105km. 험하고 난이도가 높은 대회 남자부에서 모두 정상에 올랐다.

김지수 씨가 지난해 열린 울주 나인피크 105km에서 헤드 랜턴을 착용하고 산을 오르고 있다. 김지수 씨 제공.
김지수 씨가 지난해 열린 울주 나인피크 105km에서 헤드 랜턴을 착용하고 산을 오르고 있다. 김지수 씨 제공.
경수대간 청광종주는 서울 수서역에서 출발해 대모산, 구룡산, 청계산, 우담산, 바라산, 백운산, 광교산 등 수도권 7산을 달리는 36km 코스다. 4시간 16분에 우승했다. 화대종주는 지리산 화엄사에서 대원사까지 48km를 달리는 레이스로 8시간 13분으로 정상에 올랐다.

울주 나인피크는 울산 울주 영남 알프스 산 9개를 달리는 지옥의 레이스다. 간월산 (1069m) 고헌산(1034m) 문복산(1047m) 가지산(1241m) 운문산(1188m) 천황산(1189m) 재약산(1189m) 영축산(1081m) 신불산(1159m). 상승 등반 고도만 8000m가 넘는다. 지난해 10월 30일 오후 4시에 출발해 11월 1일 오전 4시까지 36시간이 제한시간. 김 씨는 18시간24분49초로 우승했다. 울주 나인피크 대회는 헤드랜턴을 쓰고 밤새도록 달려야 한다.

“어두운 산을 거의 혼자 달립니다. 주로는 산을 9개 넘어야 하니 급한 경사의 업힐과 다운힐로 돼 있어 위험했습니다. 맘 편히 달릴 수 있는 구간은 거의 없었습니다. 가끔 암벽등반을 연상케 하는 구간도 있었죠. 하지만 제가 평소 암벽등반도 즐겼기 때문에 별로 어렵진 않았습니다. 저에게는 딱 맞는 코스였습니다.”

김지수 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이후 산을 타는 트레일러닝에 집중하다보니 국내 ‘트레일러닝 최강자’로 우뚝 서게 됐다. 김지수 씨 제공.
김지수 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이후 산을 타는 트레일러닝에 집중하다보니 국내 ‘트레일러닝 최강자’로 우뚝 서게 됐다. 김지수 씨 제공.
그는 산을 달리는 게 그냥 좋다고 했다.

“일단 산에 가면 경치가 좋고 공기가 맑아서 좋아요. 각종 나무와 바위, 개울, 언덕…. 전 평소 동물도 좋아하고 자연도 좋아했어요. 그래서인지 산에 가면 그 자체로 기분이 좋아집니다. 정상에 올라서면 힘겹게 올랐던 과정이 보상 받는 느낌도 받죠. 발 아래로 펼쳐지는 광경도 저를 기쁘게 합니다. 잠시 쉬면서 커피 한잔하고 김밥 먹는 소소한 즐거움도 있습니다.”

김 씨는 스포츠를 좋아하는 부모님 덕택에 일찍부터 각종 스포츠를 접할 수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부모님 따라 스키를 배우면서 스포츠의 즐거움을 알게 됐습니다. 운동선수를 한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취미로 즐기기 시작했습니다. 여름엔 수상스키를 탔죠. 20살 언저리에는 스노보드에 빠져 해외 원정까지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김지수 씨는 산을 타는 게 좋다고 했다. 평일엔 러닝머신이나 공원을 달리고 주말엔 서울 우면산이나 관악산을 찾아 달린다. 김지수 씨 제공.
김지수 씨는 산을 타는 게 좋다고 했다. 평일엔 러닝머신이나 공원을 달리고 주말엔 서울 우면산이나 관악산을 찾아 달린다. 김지수 씨 제공.
어렸을 때부터 등산도 즐겼다. 부모님 따라 주말에 약숫물 뜨러 서울 우면산 관악산을 다녔던 게 그가 산을 좋아하게 된 배경이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30대 초반부터는 등산과 다양한 스포츠를 혼자 즐겼습니다. 수영, 사이클, 암벽등반 등 재미있게 보이는 스포츠는 거의 다 즐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2017년 무렵 마라톤도 시작했다. 친구 따라 다니며 공원도 달리고 산도 달리게 된 것이다. 트레일러닝의 매력에 빠진 것도 그 무렵이다. 그해 동두천에서 열린 코리아 50K 트레일러닝대회 70km 부문에 출전해 7시간20분으로 남자부 4등을 했다. 트레일러닝대회에 처음 출전해 거둔 성적으론 수준급이었다. 2017년엔 세계 최고 권위의 트레일러닝대회인 울트라트레일몽블랑(UTMB)에도 다녀왔다. 그는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아무것도 모르고 따라 하다보니 다녀오게 됐다”고 했다. 당시엔 101km를 완주했다. UTMB는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트레일러닝대회로 170km(UTMB), 101km(CCC), 119km(TDS), 290km(PTL), 55km(OCC) 등 5개 종목이 열린다. UTMB에 가려면 각종 트레일러닝대회에 출전해 점수를 따야 한다. 그는 “코로나19가 사라지면 다시 UTMB에 갈 것”이라고 했다.

2018년 3월 열린 서울국제마라톤 겸 동아마라톤에서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42.195km 풀코스를 달려 2시간 52분대 기록을 내 마스터스마라토너들의 ‘꿈의 기록’인 서브스리(3시간 이내 기록)를 달성했다. 마라톤 사이클 수영을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철인3종(트라이애슬론)도 하게 됐다. 올림픽 코스(수영 1.5km, 사이클 40km, 마라톤 10km)를 3회 완주했다.

김지수 씨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산을 달리고 있다.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이후 산을 타는 트레일러닝에 집중하고 있다. 김지수 씨 제공.
김지수 씨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산을 달리고 있다.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이후 산을 타는 트레일러닝에 집중하고 있다. 김지수 씨 제공.
김 씨는 즐기다고 했지만 어려서부터 각종 스포츠를 시작해서인지 하는 종목마다 두각을 나타냈다. 2018년 화대종주에서 8시간36분으로 2위를 했고, 2019년 거제 100km 울트라트레일러닝대회에서는 17시간 12분16초로 우승을 했다. 코로나19 이후 트레일러닝에 집중해 국내 ‘넘버 1’이 될 수 있었던 자질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김 씨는 평소 거의 매일 달리고 주 1,2회 산을 찾아 달린다.

“사업도 해야 하기 때문에 집중적인 훈련을 할 수는 없습니다. 평일엔 새벽 혹은 저녁 때 공원이나 헬스장에서 천천히 1~2시간 달리고, 주말엔 산을 찾아 급격한 업힐과 다운힐이 이어진 코스를 10~15km 빠르게 달립니다. 둘레길보다는 산봉우리를 넘는 것을 즐깁니다. 이렇게 한 2시간 산을 타야 살아 있음을 느낀다고 할 수 있죠. 우면산과 관악산을 자주 찾고 있습니다.”

이렇게 산을 타는데 아픈 곳은 없을까?

“등산만 할 땐 무릎에 약간 통증이 온 적이 있어요. 하지만 사이클을 타면서부터는 통증을 느끼지 못했어요. 전 웨이트트레이닝으로 특정 부위 근육을 키우지도 않아요. 그래도 아픈 곳은 없습니다.”

김지수 씨가 지난해 8월 열린 화대종주 트레일러닝대회에서 남자부 1위로 결승선을 통과하고 있다. 김지수 씨 제공.
김지수 씨가 지난해 8월 열린 화대종주 트레일러닝대회에서 남자부 1위로 결승선을 통과하고 있다. 김지수 씨 제공.
김 씨는 조만간 투어링 카약(Touring Kayak)을 시작하겠다고 했다. 카약도 코로나19에 맞는 레저스포츠다. 비교적 안전한 야외활동인 동시에 ‘거리두기’가 손쉬운 활동이기 때문이다. 최근 카약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도 늘고 있다.

“투어링 카약을 눈여겨보고 있었습니다. 길이가 4~5m 돼 이동이 어렵고 보관도 쉽지 않아서 할까 말까 망설이고 있었는데 시작하려고 합니다. 강과 바다에서도 탈수 있고 생필품을 싣고 무인도 등으로 건너가 캠핑을 즐길 수도 있어 색다른 묘미를 만끽할 수 있는 스포츠로 알려져 있습니다.”

김 씨에게 스포츠는 건강 지킴이이기면서 삶의 질을 윤택하게 해주는 취미이다. 그에게 스포츠 없는 삶은 의미가 없다. 평생 이렇게 스포츠를 즐기면서 살겠다고 했다.

양종구 논설위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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