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정 “‘미나리’, 조미료 없는 담백한 맛의 영화…건강하니 잡숴보세요”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2월 26일 17시 17분


‘미나리’ 기자간담회 캡처 © 뉴스1
‘미나리’ 기자간담회 캡처 © 뉴스1
식구(食口)란 한 집에 살면서 함께 밥을 먹는 사람들이다. 가족의 또 다른 말로 식구가 쓰이는 건 매일 한데 모여 밥을 먹는 행위가 친밀해야 가능해서다. 다음달 3일 국내에서 개봉하는 리 아이작 정(정이삭) 감독의 ‘미나리’는 배우와 감독 모두 식구가 된 영화다. 26일 온라인 간담회에서 정 감독과 배우 스티븐 연, 윤여정, 한예리는 촬영장 밖에서 식구가 됐기에 카메라 앵글 안에서도 가족의 모습을 생생하게 담아낼 수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이 영화는 1980년대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제이컵(스티븐 연), 모니카(한예리)와 이들의 자녀 앤(노엘 조), 데이비드(앨런 김) 그리고 타향살이를 하는 딸 모니카를 위해 미국으로 건너간 할머니 순자(윤여정)의 이야기다.

“저와 윤여정 선생님이 에어비앤비에서 빌린 집에서 함께 지냈어요. 다른 배우와 감독님도 촬영을 마치고 그 집에 모여서 매일 저녁밥을 먹으면서 시나리오 이야기를 나눴죠. 그 때가 가장 그리워요.” (한예리)

미나리는 이민 1세대 부모님 밑에서 자란 정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다. 가족 사랑이 우선인 모니카와 경제적 성공이 더 중요한 제이컵이 대립과 화해를 반복하는 모습은 정 감독이 자라면서 본 부모님의 얼굴이다. 6.25 전쟁에서 남편을 잃고 홀로 딸을 키운 정 감독의 외할머니에 대한 기억도 순자 역할에 고스란히 담겼다.

“이 영화가 많은 관객들에게 와 닿는 이유는 영화가 저 개인이나 이민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관계의 보편성을 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이컵의 가족이 겪는 갈등, 어려운 상황에서도 서로 사랑하고 헤쳐 나가는 모습에 많은 분들이 공감하는 게 아닐까요. 무엇보다 가족들의 인간적 모습을 잘 담아낸 배우들의 공이 가장 크고요.” (정 감독)

정 감독은 배우들에게 공을 돌렸지만 배우들은 정 감독의 따뜻한 디렉팅을 치켜세웠다. 틀에 가두지 않는 감독 스타일 덕에 윤여정의 아이디어로 순자가 이로 밤을 깬 뒤 손자에게 건네는 장면, 손자를 침대에 뉘이고 자신은 바닥에서 자는 장면 등 ‘한국 할머니’의 정(情)을 생생히 표현할 수 있었다.

“제가 맡은 역이 아이작 감독의 할머니역이니 그에게 첫 번째로 한 질문이 ‘당신의 할머니 흉내를 내야하느냐’였어요. 그러자 아이작이 ‘절대 그러지 말고 원하시는 대로 하시라’더군요. 그 말을 듣고 속으로 ‘이 감독 괜찮다’며 A+를 줬죠. 어떤 감독은 ‘이렇게 해 달라’고 요구하면서 배우를 가둬요. 전 아이작 덕에 자유를 얻었어요.” (윤여정)

이들은 관객들에게도 함께 식구가 돼 줄 것을 청했다.

“우리 영화를 식탁에 비유하고 싶어요. 식탁은 누구에나 열려 있죠. 관객들이 저희가 차려 놓은 식탁에 와서 맛있게 음식을 드셨으면 좋겠어요.” (정 감독)

“미나리가 좋았던 이유는 시나리오에 아무런 조미료가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굉장히 담백하고 순수한 맛이라 양념을 세게 하는 한국 음식에 익숙한 한국 관객은 안 먹을 수도 있겠지만 건강하니 잡숴보세요. 하하.” (윤여정)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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