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칠칠맞다고? 웃어야 할까, 화내야 할까[손진호의 지금 우리말글]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2월 28일 09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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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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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촐한 자리지만 꼭 참석해 주세요.” 청첩장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표현이다. 이때 ‘조촐하다’의 뜻은 ‘변변치 못하다는’, 우리네 겸양의 표현이다. 집에 손님을 맞이하면서, 애써 갖은 음식을 준비하고도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드세요”라고 겸손해하는 것과 같다. 많은 이가 이처럼 겸양의 뜻으로 조촐하다를 입에 올리지만, 사전적 의미는 ‘아담하고 깨끗하다’ ‘호젓하고 단출하다’란 뜻이다.

이 뜻풀이에서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진 않았는지. 그렇다. 이 낱말은 자리를 마련한 쪽에서 쓰는 게 아니라, 초대받은 손님이 주인에게 “조촐한 자리를 마련해 주셔서 즐거웠습니다” 하고 칭찬할 때 쓰는 말이다. 아담하고 깨끗한 자리에 만족했다는 인사인 셈이다.

그러고 보니 낱말의 쓰임새를 잘못 알고 사용하는 예가 꽤 있다. ‘칠칠하다’와 ‘칠칠맞다’, ‘변변하다’도 그중 하나다.

‘칠칠하다’는 ‘주접이 들지 않고 깨끗하고 단정하다’ ‘성질이나 일 처리가 반듯하고 야무지다’는 뜻이고, ‘칠칠맞다’는 ‘칠칠하다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이상한 건, 언중은 대부분 사전과는 정반대의 뜻으로 쓴다는 점이다. 드라마 속 대사도 그랬다. 상대방에게 핀잔을 주며 “아유, 칠칠맞긴…”이라고 하는가 하면, 식사를 하다 옷에 음식을 흘리고선 “칠칠맞게 왜 이러지”라고 한다. 단어의 쓰임새대로라면 ‘칠칠맞지 못하긴’ ‘칠칠맞지 못하게’라고 해야 옳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 이는 부정적인 느낌을 주는 ‘-맞다’의 영향 때문인 듯하다. 능글맞다 쌀쌀맞다 등에서 보듯 ‘맞다’가 붙은 낱말은 대개가 부정적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칠칠맞다’도 지레짐작으로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칠칠맞다를 부정적인 의미로 쓰려면 ‘못하다’ ‘않다’와 함께 쓰면 된다. “너는 꼴이 그게 뭐니? 칠칠맞지(칠칠하지) 못하게”처럼 말이다.

‘칠칠맞다’처럼 부정적인 뜻으로 쓸 때 ‘못하다’를 붙여 써야 하는 말이 또 있다. ‘안절부절못하다’가 그것. 한 낱말이므로 붙여 써야 한다. 흔히 ‘안절부절하지 말고’처럼 쓰기 쉽지만 ‘안절부절못하지 말고’라고 해야 한다. 영 어색하면 ‘안절부절 어쩔 줄 모르다’처럼 쓰면 된다.

‘변변하다’도 ‘보잘것없다’는 뜻으로 잘못 알고 있는 이가 의외로 많다. 이 낱말의 쓰임새가 헷갈린다면 ‘변변한 집안’이 제대로 된 집안인지 아닌지를 생각해 보시길. 이 또한 부정적으로 표현하려면 ‘않다’를 붙여 ‘변변하지 않다’, 줄여서 ‘변변치 않다’, ‘변변찮다’로 쓰면 된다.

칠칠맞다를 사전의 뜻풀이와는 달리 사용하는 걸 어떻게 봐야 할까. 언중의 말 씀씀이가 지금처럼 계속된다면 언젠가는 ‘칠칠맞지 못하다’와 같은 뜻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일 처리가 너만큼 칠칠맞은 사람도 드물다”는 소리를 듣고 웃는 사람보다 화를 내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렇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손진호 어문기자 songba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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