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창극단이 선보인 올해 첫 작품… 연출가 배요섭이 극본가로도 참여
“김춘봉은 나의 다른 역할… 기적의 나무 찾아가는 여정 통해
관객이 ‘진정한 나’와 마주하길”
신작 공연 포스터나 팸플릿을 보면 가장 먼저 전면을 장식한 주인공 얼굴이나 이미지에 눈길이 간다. 그 다음 하단에 적힌 제작진 이름으로 시선이 옮겨진다.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11일 개막하는 국립창극단의 ‘나무, 물고기, 달’ 포스터 아래에는 ‘연출 배요섭’ ‘극본 김춘봉’ ‘작창·작곡·음악감독 이자람’이라고 써 있다.
소리꾼 이자람은 물론,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를 각색한 연극 ‘휴먼푸가’로 평단을 휩쓴 배요섭 연출가는 익히 알려진 터. 그런데 “은둔한 채 물리학과 인도 신비주의를 오가며 의식의 본질을 탐구하는 글을 쓴다”는 김춘봉 작가는 누구일까. 최근 배 연출가, 김 작가를 만나기로 한 국립극장에는 배요섭 연출가(51) 한 사람만 나타났다. 그는 “달라지는 제 역할에 따라 달라지는 여러 이름이 필요했다”고 고백했다. 인터뷰 중에도 그는 질문에 따라 다른 이름을 꺼내 들며 답했다.
국립창극단이 올해 첫 작품으로 내놓는 ‘나무, 물고기, 달’은 여러 설화에서 따온 줄거리에 창(唱)을 얹은 공연이다. 소녀 소년 순례자 물고기 등이 기적을 이루게 해주는 소원나무로 향하는 여정을 그렸다. 배우들은 전통 판소리처럼 해설자가 됐다가도 이내 다시 캐릭터 연기를 펼친다. 서정금 민은경 이소연 유태평양 등 9명이 출연한다.
작품은 동화 같기도 하고 뿌연 안개 속에 감춰진 동양화를 떠올리게도 한다. 작가가 인도 설화 ‘칼파 타루(Kalpa Taru)’, 제주도의 구전 신화 ‘원천강본풀이’, 중국의 월하노인 이야기를 버무린 산물이다. 배 연출가는 “인류에 전해지는 ‘이야기의 원형’에 김 작가가 관심이 많다. 공연을 통해 관객이 진정한 ‘나 자신’과 마주하길 바란다”고 했다.
배 연출가는 강원 화천에 터를 잡은 ‘공연창작집단 뛰다’의 창단 멤버다. 몸, 소리, 오브제에 대한 탐구를 통한 실험적 작품 세계를 펼쳐왔다. 줄곧 연극만 해왔던 그는 이번에 처음 창극에 도전한다. 판소리에 대한 이해도가 여느 국악인 못지않아 기대를 모은다. 그는 “판소리는 소리가 눈에 그려질 정도로 시각적으로 재밌는 음악”이라며 “작창·작곡한 이자람 감독의 음악 위에 20∼30년 넘게 한길만 팠던 소리꾼들의 내공과 극이 만나면 강렬한 불꽃이 생길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음을 떠는 요성, 아래 음에서 본음으로 밀어 올리는 추성 등 소리를 시각화한 작품을 눈여겨봐 달라”고 했다.
공연계에서 마치 ‘부캐(부캐릭터)’를 키우듯 역할을 분리한 이는 흔치 않다. 그는 “김 작가가 온라인 글을 쓸 땐 필명 ‘은둔시인’으로, 배우로는 ‘류솔’로 활동했다”고 쑥스럽게 고백했다. 물리학에 빠져 있던 포항공대 재학 시절, 거의 매일 풍물반을 찾아 장구에 반쯤 미쳐있던 그는 우연히 연극을 접했고 ‘이게 뭔가’ 싶어 대학원 진학 대신 연극판에 뛰어들었다. 작업이 없을 땐 명상, 요가를 즐기다가 철인 3종 경기에도 도전하고 있다. 그의 이름만큼 결이 다양한 인간 배요섭은 “연습실에서 배우들이 작품에 공감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작품은 절반 이상 성공”이라고 나지막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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