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가시를 지닌 동물이라도 호저는 가시를 공격용 창으로 쓰고 고슴도치는 방어용 방패로 쓴다. 개미핥기는 땅속에 집을 짓고 살아가는 개미를 먹이로 하기 때문에 주둥이는 길지만 이빨은 아예 없거나 흔적만 남은 모습으로 진화했다. 치타는 암컷과 수컷이 함께 모여 생활할 경우 서로를 교미의 상대로 생각하지 않아 번식이 불가능하기에 동물원에서는 번식기를 제외하고는 철저히 암수의 활동 공간을 분리해야 한다.
이는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동물들의 특징이다. 저자는 동물원부터 야생동물 구조센터, 동물병원까지 동물이 있는 곳에 몸담아 온 수의사로서 생명이 살아가는 다양한 방식을 보며 느낀 점을 기록했다. “동물원에서는 세상에 인간만 존재한다는 감각이 사라진다”는 그의 말처럼 조류부터 코끼리까지 다채로운 동물을 지켜보며 배운 이들의 삶의 방식, 이를 통해 생명의 존엄성을 배운 과정은 생동감이 넘친다.
이 책은 수의사로서의 고민과 좌절의 기록이기도 하다. “동물원의 동물들은 행복할까?”라는 질문을 동물원에서 일하는 내내 뇌리에서 지우지 못했던 그는 동물원의 역할이 변화해야 한다는 쓴소리도 가감 없이 전한다. 동물원이 인간의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전시장이 아니라 동물과 사람이 공존하기 위해 인간이 동물에 대해 배우는 교육의 장이자 동물 종족 번식을 돕는 공간이 돼야 한다고 제언한다. 동물원을 수익 창출 공간으로만 생각한다면 이는 섬에 사람을 가두고 그를 노예처럼 부리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저자의 비판은 동물원을 운영하는 이는 물론이고 일반 독자에게도 고민할 거리를 던진다.
동물원을 떠나 동물병원을 차린 뒤의 이야기는 반려동물을 키우는 국내 1500여만 명에게 보다 직접적인 조언을 한다. 함께 살아가는 가족으로서 반려동물에게 어떤 보호자가 돼야 하고, 무엇을 해 주어야 하는지 설명한다. 보호자의 부주의한 관리로 이빨을 모두 잃고 온몸에 종양이 퍼졌지만 동물병원의 극진한 간호로 수개월을 더 살다 간 강아지 ‘오복이’의 이야기는 보호자의 역할, 그리고 반려동물의 행복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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