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계 비올리스트’ 용재 오닐, 그래미 수상…“어두운 곳에 햇빛 들어온 것 같아”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15일 14시 41분


“돌아가신 할머니가 이 곡을 들으면 좋아하셨을 겁니다. 어머니는 소식을 듣고 ‘넌 똑똑한 아이니까’라며 기뻐하셨어요.”

한국계 미국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이 그래미상 ‘클래식 기악연주상’(베스트 클래시컬 인스트루멘털 솔로)을 수상했다. 수상 앨범은 데이비드 앨런 밀러 지휘 올버니 교향악단과 협연한 크리스토퍼 테오파니디스의 ‘비올라와 실내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용재오닐은 6·25전쟁 고아로 미국에 입양된 어머니와 아일랜드계 미국인 조부모 밑에서 성장했으며 2005년, 2010년 그래미상 후보에 오른 일이 있다. 뉴욕에 있는 그를 전화로 인터뷰했다.

―인터넷으로 중계된 그래미상 사전시상식에서 “오늘은 비올라에 위대한 날”이라고 말했는데.

“비올라는 바이올린과 첼로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지 못해왔지만 매우 다재다능한 악기고 수많은 색채를 표현해낼 수 있다. 이 악기에 대한 관심을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된 점이 감사하고 행복하다”

―“음악가들이 도전을 받는 시기에 내게 기회가 주어졌다”는 소감도 말했다.


“지난해부터 수많은 공연이 취소되었고, 여러 음악가들이 굉장한 슬픔과 실망을 겪었다. 수상 소식을 듣고는 어두운 곳에 갑자기 햇빛이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돌아가신 할머니가 이 소식을 들으면 뭐라고 하셨을까.

“내가 음악의 길로 가도록 격려하고 이끌어주신 할머니는 1999년 마지막으로 내 콘서트를 들으셨다. 약간 까다로울 수 있는 월튼의 비올라 협주곡이었는데, 들으신 뒤 ‘독주자가 크게 활약하는 곡이어서 좋았다’고 말씀하셨다. 수상을 기뻐하실 것은 물론 이번 앨범도 좋아하실 것 같다.”

―수상 앨범에 실린 크리스토퍼 테오파니디스의 ‘비올라와 실내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에 대해 설명한다면.

“이 곡은 작곡가가 두 가지에서 영감을 받은 곡이다. 하나는 미국 원주민 나바호족의 시문학이다. 미국 원주민들은 오랜 시간 동안 자연과 소통하면서 영감에 넘친 시가들을 남겼다. 네 악장으로 구성된 이 곡에도 대자연의 신비와 호흡이 풍성하게 살아있다.

또 하나는, 2001년 일어난 9·11 테러 사건이다. 이 사건은 특히 네 악장 중 2악장과 3악장에 반영되었다. 2악장에서는 비올라 솔로의 비중이 큰데, 테러사건 후 뉴욕 양키스타디움에 전현직 대통령들을 비롯한 요인들과 수많은 관중이 운집한 가운데 추도 기도회가 열렸던 모습이 들어있다.”

―시대에 던지는 메시지가 큰 곡인 것 같다.

“비극의 시대에 사람들은 과거를 되돌아보게 된다. 세계가 잘못된 일을 겪을 때 음악은 인류 공통의 언어로 호소할 수 있다. 이 곡을 녹음한 뒤 일어난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최근의 아시아인 혐오 범죄 등을 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음반에 실린 연주에 대해 테오파니디스는 어떻게 평가했나.

“이 곡은 테오파니디스가 9·11 테러로 인해 절망감으로 젖혀두었다가 나를 위해 다시 쓰기 시작했다. 이번 연주를 위해 우리는 수없이 머리를 맞대고 의논했고, 그는 독주부분 해석에 대한 조언을, 나는 비올라 기법에 대한 조언을 했다. 사실 작곡가와 함께 만든 음반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수상 앨범에는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연이 협연한 테오파니디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함께 실렸다. 본디 바이올리니스트 사라장을 위해 쓴 곡이다. 테오파니디스는 한국인이나 한국계 작곡가들에게 특별한 친밀감이 있나.

“바이올린협주곡은 사라장의 특별하게 강한 카리스마에 영향을 받아 쓴 곡으로 알고 있다. 누구나 그렇듯이 테오파니디스는 한국 음악가들이 매우 잘 훈련되어있고 목표의식이 높으며 한마디로 잘 연주한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미상은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상이다. 음악가들에게도 의미가 각별한가.


“이 상은 음악가들이 투표해서 뽑는 상이라 특히 의미가 크다. 주요 음악계 인사들의 인정을 받은 것 같아 기쁘다.”

―언제 한국 청중과 만날 수 있을까.

“8월에 내가 참여하는 타카치 현악4중주단 내한 연주가 예정되어 있었는데, 현재로 개최 여부는 불투명하다. 연말 경 다른 연주가 예정되어 있어 그때는 만났으면 좋겠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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