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 인생 55년간 한국을 주 무대로 활동했던 74세의 노장 윤여정이 ‘미나리’로 할리우드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이민 간 딸을 위해 미국으로 가 손주를 돌보는 ‘순자’ 역할로 한국 배우로 최초, 아시아계 배우로는 네 번째로 아카데미상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미국 영화계 양대 시상식으로 꼽히는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에서 아시아계 배우는 수상은커녕 후보 지명조차 드물었다. 미 매체 NBC뉴스는 “연기 부문에서 아시안 배우의 부재는 아카데미의 긴 역사에서 가장 흉측한 오점(Ugliest Stains) 중 하나였다”고 비판했다.
역대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든 아시아계 배우는 ‘사요나라’(1957년)의 우메키 미요시(일본), ‘모래와 안개의 집’(2003년)의 쇼레 아그다슐루(이란), ‘바벨’(2006년)의 기쿠치 린코(일본) 등 세 명에 불과했다. 이 중 수상자는 우메키가 유일하다.
미국 언론과 평단은 일찌감치 윤여정의 후보 지명을 예견했다. 윤여정은 전미비평가위원회를 비롯한 미 현지의 영화제와 비평가상에서 33개의 여우조연상을 거머쥐었다. 골든글로브가 미나리를 외국어영화상 후보에만 올리자 미 연예매체 엔터테인먼트 투나이트는 ‘가장 어처구니없는 누락’으로 윤여정의 후보 지명 불발을 꼽았다.
윤여정이 제작비 20여억 원의 독립영화 한 편으로 미국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건 비전형적인 할머니 캐릭터를 선보였기 때문이다. 영화 속 순자는 손자 데이비드(앨런 김)의 말처럼 “할머니 같지 않은” 할머니다. 쿠키도 구울 줄 모르고 손주에게 화투를 가르치며 ‘지랄’ 같은 욕도 서슴지 않는다. 뉴욕타임스는 그를 ‘영리한 신 스틸러’라 평했고, 미 연예매체 할리우드리포터는 ‘비전통적 할머니’라고 평가했다.
윤여정의 연기도 매력적이다. 영화 데뷔작 ‘화녀’에서 주인집 남성을 유혹하는 역을 맡았던 그는 박카스 아줌마를 연기한 ‘죽여주는 여자’, 초등학교 동창과 바람이 난 시어머니를 연기한 ‘바람난 가족’ 등 평범하지 않은 역할을 소화했다. 정점에 오른 연기로 할리우드에서도 매력적으로 비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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