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플래시100]“무죄 아니면 사형을” 일 왕궁에 폭탄 던진 김지섭의 외침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16일 11시 40분


1924년 4월 25일



플래시백
1924년 1월 5일 오후 7시, 어둠이 깔린 도쿄의 일왕 궁성 근처를 한 사람이 오가고 있었습니다. 밤이 되었으니 빨리 돌아가라는 경찰의 말도 듣지 않던 이 사람은 갑자기 궁성으로 들어가는 니주바시(이중교)에 폭탄 한 개를 던졌습니다. 그리곤 경찰을 밀치고 궁성을 향해 돌진했죠. 경비병들이 달려오자 두 번째, 세 번째 폭탄을 연이어 던진 뒤 붙잡히고 말았습니다. 일본 열도를 경악하게 만든 이 사람은 39세의 의열단원 김지섭이었습니다.



경북 안동 출신인 김지섭은 어려서부터 사서삼경을 익혔습니다. 머리가 좋아 천재소리를 들었다고 했죠. 스물한 살 때 일어학교에서 두 달 만에 일어를 끝냈고 곧이어 재판소 서기시험에 합격해 고향 사람들을 놀라게 했답니다. 1910년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자 그동안 하던 법원 서기 겸 통역 일을 던져버리고 중국 시베리아 등으로 독립의 길을 찾아 나섰죠.

김지섭은 1922년 상하이에서 의열단에 가입했습니다. 일제의 주요 기관과 요인을 없애 민족을 깨우치겠다는 마음을 굳혔던 것이죠. 문제는 돈이었습니다. 의열투쟁에도 자금이 필요했거든요. 그가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극동민족대회에 참가했던 것도 자금을 얻어 보려는 목적이었습니다. 1922년 12월 경성에 잠입해 판사 백윤화에게 5만 원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기도 했고요. 의열단이 1923년 3월 폭탄 36개와 권총 5정 등을 경성에 들여와 ‘제2차 암살‧파괴 계획’을 실행하려고 할 때도 김지섭은 중심인물이었습니다. 경기도경찰부 소속 경부 황옥이 관련된 바로 그 계획이었죠. 판사 백윤화에게 5만 원을 요구할 때도, ‘제2차 암살‧파괴 계획’ 때도 동지들은 붙잡혔지만 김지섭은 용케 몸을 피했습니다.



1923년 9월 간토대지진으로 죄 없는 동포 6600여 명이 학살당하자 그는 피가 거꾸로 솟았습니다. 1924년 1월 도쿄에서 제국의회가 열린다는 기사를 읽고 일제 수상과 대신, 의원들에게 복수하겠다고 마음먹었죠. 상하이에서 일본 석탄운반선에 숨어 타고 후쿠오카로 밀항했습니다. 열흘 만인 1923년 12월 30일 도착했을 땐 뼈만 앙상했고 몸에 지닌 것은 폭탄 3개와 여비 100원, 나카무라 히코타로라는 가짜명함 30장뿐이었습니다.

도쿄로 가던 도중 의회가 휴회했다는 소식에 왕궁으로 대상을 바꿨으나 폭탄이 모두 터지지 않는 바람에 목적은 이루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불같은 성격으로 법정에서도 맹렬하게 싸웠죠. 혹독한 고문 탓에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면서도 1시간 20분이나 모두진술을 했죠. “총독부가 조선사람을 개나 말 같이 여긴다…이를 일본사람에게 알리는 동시에 정치가에게도 반성을 하게 하려 했다”며 거사 동기를 당당하게 밝혔습니다.



그는 “우리 민중의 생명과 재산을 위해 행동했으므로 벌 받을 까닭이 없다”며 무죄석방하든지 사형을 내리라고 요구했죠. 1심에서 무기징역형을 받고 2심에서도 ‘무죄 아니면 사형!’ 요구를 굽히지 않았습니다. ‘잊을 수 없는 우리들의 변호사’로 불린 후세 다쓰지 등 일본인 변호사들이 애를 썼지만 또 무기징역형이었죠. 그는 2심을 앞두고 구속만기가 됐는데도 석방하지 않자 성치 않은 몸에 유서를 써놓고 단식투쟁을 벌일 만큼 강단이 있었습니다.

치바형무소에서 복역하던 그는 1928년 2월 독방에서 갑자기 쓰러져 숨을 거뒀습니다. 뇌일혈이었죠. 43세의 짧은 일생이었습니다. 그의 죽음에 쏠린 의혹의 시선은 부검으로 풀렸습니다.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허겁지겁 달려간 친동생 김희섭에게 돌아온 것은 한 줌의 재와 형무소가 불허한 편지 몇 통 그리고 노역의 대가인 14원 30전이었죠. 안동 고향에는 같이 산 적이 거의 없던 아내와 양자가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동아일보는 총독부의 보도 해제가 있던 1924년 4월 25일자를 시작으로 김지섭 관련 소식을 꾸준하게 전했습니다. 일본 현지에서 열린 재판에는 특파원을 보냈고 1925년에는 김지섭의 옥중수고를 변호사로부터 건네받아 3회에 걸쳐 연재하기도 했습니다.

이진 기자 leej@donga.com

과거 기사의 원문과 현대문은 '동아플래시100' 사이트(https://www.donga.com/news/donga100)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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