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선영 작가의 오늘 뭐 먹지?]“우리 강아지 왔나” 할머니 무르팍 같은 구수한 수수팥떡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17일 03시 00분


제주 떡집 ‘라이스나이스’의 수수팥떡. 임선영 씨 제공
제주 떡집 ‘라이스나이스’의 수수팥떡. 임선영 씨 제공
임선영 음식작가·‘셰프의 맛집’ 저자
임선영 음식작가·‘셰프의 맛집’ 저자
아무 조건 없이 아무 때나 찾아가도 무르팍을 내어주며 복슬강아지처럼 쓰다듬어 주는 사람이 있었다. 시골집 할머니. 나는 아직도 할머니 방의 담요 냄새와 구식 텔레비전, 처마 밑에 걸려 있는 흑백 가족사진들을 어렴풋이 기억한다. 그중 가장 뚜렷한 것은 부엌에서 내어 주시던 수수팥떡의 맛이었다. 할머니 손맛은 음식으로 기록됐다. 추억이라는 저장소에 깊이 남아 있다. 손맛은 텍스트나 데이터가 아니라 사람의 추억을 통해 전달된다. 기억하는 사람들조차 사라지면 손맛, 향기, 추억은 모두 홀씨처럼 날아가 버리지 않을까.

제주도에는 40년 역사를 이어오는 떡집 ‘라이스나이스’가 있다. 언뜻 보면 요즘 개업한 떡카페 같지만 주인장의 사연을 간직한 곳이다. 떡집의 모태가 된 것은 고향 할머니 할아버지가 문을 연 떡 방앗간이다. 1982년 두 사람은 제주도 세화리에서 ‘세화제분소’라는 방앗간을 개업한다. 정미소로 시작해 기름 착유, 떡 제조업을 추가하면서 지금의 방앗간이 됐다. 할아버지는 회전솥을 직접 개발해 보리와 콩을 볶았다. 보리개역(제주 전통식 미숫가루)은 제주산 보리를 찌고 말리고, 제주콩은 회전솥에 볶아내는데 고소한 맛이 그만이다. 찬물에 넣어도 잘 녹아 시원하게 마시기 좋고, 쌀이 귀한 제주 사람들의 한 끼 식사로도 인기가 높았다.

이제는 손녀가 옆으로 와서 오손도손 떡을 함께 빚으며 라이스나이스라는 떡집 간판을 방앗간 옆에 걸게 됐다. 할머니가 팥을 삶고 밑 재료 준비를 해주면 손녀는 이를 예쁘고 정갈하게 떡으로 빚는다.

수수팥떡은 할머니가 팥을 직접 삶아 옛 팥 맛이 그대로 났다. 촉촉하게 삶은 팥은 설탕 맛이 아니라 팥 고유의 달콤쌉싸름함이 그만이다. 그 안의 수수떡은 수수와 찹쌀을 섞어 쌉싸름한 고소함에 부드러운 쫄깃함을 더했다. 팥을 수북하게 넣어주니 입안에 가득히 씹힌다. 팥가루를 묻히는 경단 스타일이 아니라 통팥을 삶아 수북하게 덮는 오메기떡 스타일이다. 또 하나 명물은 방앗간에서 만든 제주보리개역이다. 100% 제주산 보리와 콩을 사용해 옛날 방식으로 만든다. 제주 보리 80%에 제주 콩 20%의 배합이 황금비율이다. 보리가 더 많으면 뻑뻑해지고 콩이 너무 많아도 개운함이 덜하다. 제주쑥인절미도 맛있다. 해풍 맞은 제주 쑥은 향긋하기 그지없는데 방앗간에서 직접 제분한 찹쌀을 만나 제대로 꽃핀다. 거기에 직접 볶은 콩가루를 얹어주니 한입만 먹어도 코끝마저 향기롭다. 제주쑥인절미는 국내산 찹쌀과 인근에서 직접 캔 쑥을 일대일로 배합해 만든다. 삶의 향기와 추억이 녹아든 떡이었다. 할머니가 허리가 아파 일손을 돕기 위해 곁으로 찾아온 손녀의 마음도 떡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임선영 음식작가·‘셰프의 맛집’ 저자 nalgea@gmail.com
#수수팥떡#할머니#무르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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