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다윈이 1859년 ‘종(種)의 기원’을 발표하면서 진화론을 ‘창시’했다고 우리는 알아왔다. 더 공부해본 사람이라면 같은 시대의 앨프리드 월리스가 다윈에게 자신의 연구를 전했으며, 진화론은 두 사람 협업의 산물이라는 사실도 안다.
그러나 이 책의 부부 저자가 전하는 사실은 여기서 더 나아간다. ‘종의 기원’이 출간될 즈음 지식인들에게 진화는 이미 널리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다윈의 공로는 고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와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사슬 속의 수많은 고리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게 저자들의 설명이다. ‘진화 이론의 진화사(史)’가 이 책을 이루는 줄기다.
기원전 5세기 그리스 사상가 엠페도클레스는 ‘생명의 원초적 단계에선 기괴한 부위들이 조합을 이뤘지만 살아가기 적합한 형태만 살아남아 번식했다’고 생각했다. 이보다 전인 기원전 6세기의 아낙시만드로스는 ‘바다에서 물고기가 먼저 등장했고, 인간은 이 물고기 상태에서 발달했다’고 설명했다.
기원전 3세기에 에피쿠로스가 한 말은 한층 현대적으로 들린다. 그는 “최초의 생물이 ‘원자’의 결합을 통해 형성됐고 그중 살아남기에 유리한 것만 살아남았다”고 봤다. 18세기 프랑스 사상가 디드로는 ‘동물계는 각 요소가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었고, 결합이 가능해져 결합하게 되었으며, 이런 전개가 일어날 때마다 수백만 년이 걸렸고, 지금도 새로운 전개가 일어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밝혔다.
심지어 찰스 다윈의 조부인 이래즈머스 다윈도 진화에 관한 중요한 통찰을 남겼다. 그는 ‘온혈동물은 단 하나의 생명 가닥으로부터 생겨났으며, 지속적으로 개량해나가는 성질과 개량된 점을 다음 세대로 영원히 물려주는 성질을 지니고 있다’고 썼다. ‘끝없는 파도 밑에서 유기생명체가 태어나… 지느러미와 발과 날개 달린 숨 쉬는 계통이 나온다.’ 다윈은 ‘종의 기원’을 발표한 뒤에야 조부가 쓴 이 글들을 접했다.
책 후반부엔 유전자를 이루는 RNA(리보핵산)와 DNA(디옥시리보핵산)에 이름을 붙인 레빈, 이것들의 구조를 밝힌 왓슨과 크릭을 비롯한 20세기 유전학 대가들의 활약을 소개한다. 책 전체에 걸쳐 150명이 넘는 과학자와 사상가의 이름이 등장한다.
최재천 교수(다윈포럼 대표)의 추천사 말마따나 ‘겨울밤 모닥불 곁에 모여 앉아 듣는 듯한 조곤조곤 진화 이야기’라 할 만하다. 진화 전쟁의 장(場)인 여러 지질시대의 지식도 방대한 차원으로 펼쳐진다.
마지막 장에서 저자들은 진화와 유전학의 이야기는 지금도 적혀 나가고 있다고 말한다. 유전자의 활동을 제어하는 세포 메커니즘은 이제야 밝혀지기 시작한 상태다.
이 순간에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바이러스는 변이를 거듭하며 우리를 위협한다. 바이러스 자체의 관점에서는 ‘진화’다. 진화와 유전 메커니즘의 완전한 규명은 미래에도 거듭 발생할 팬데믹의 불안에서 인류를 구해줄 핵심적인 열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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