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의사들이 제일 두려워하는 속담으로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살지’라는 우스개가 있습니다. 실제 치아를 다 빼서 하나도 없거나 구강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제대로 씹을 수가 없음에도 영양실조에 걸리거나 체중이 급격하게 줄어든 분들이 그리 많지 않은 걸 보면 속담도 경험칙에 의한 과학이라는 생각까지 듭니다.
30년 전, 제가 개원한 초기만 해도 비교적 젊은 환자 중에도 부분틀니나 완전틀니를 하고 있는 경우가 꽤 있었습니다. 지금은 자연치아를 살려 보려 애를 쓰고, 마지막 선택지로 발치를 하고 임플란트 시술을 하니 불편한 틀니에서 어느 정도 해방이 되었지요.
그렇다면 치아가 부실할 수밖에 없던 선조들은 고기, 특히 소고기를 어찌 요리해서 먹었을까요? 조선시대에는 민간에서 소를 공개적으로 도축할 수가 없었지만, 암암리에 소고기 유통은 많았던 듯합니다. 성리학이 대세였던 이 시대에는 탐식을 경계하여 육식을 멀리하려 했지만, 한번 경험한 고기 맛을 어찌 통제할 수 있겠습니까? 소를 일부러 다치게 한 뒤, 잘 낫질 않으니 이제 잡아야겠다고 관에 요청하거나 아픈 부모에게 효도를 하려 도축하겠다는 청원까지 한 모양입니다. 심지어 양반들은 ‘설야멱’이라 해서, 눈 내리는 밤에 모여 소고기를 구워먹는 풍류를 즐기기도 했다는군요.
하지만 치아가 부실한 양반과 일반 백성들은 고기를 씹기가 힘들었겠지요. 그 대처방안으로 나온 것이 바로 떡갈비 아니었을까요? 갈빗살을 잘 다져서 양념을 하고 이를 뭉쳐서 다시 갈빗대에 붙여 구웠으니 이가 하나도 없는 사람도 맛있게 먹었을 터입니다. 그 모양새가 꼭 시루떡을 닮아 떡갈비라 불렀던 모양입니다.
임금님이 드시던 떡갈비가 상궁과 나인들에 의해 사가에 퍼졌다는 말도 있고 유배를 간 양반들이 즐겨서 알려졌다는 설이 있는데, 문헌적 근거를 찾기는 어렵습니다. 임금이 체통 없이 손으로 갈비를 쥐고 뜯기가 민망하여 미리 고기를 먹기 좋게 손질하고 다져서 만든 음식이라는 그럴듯한 이야기도 있습니다.
떡갈비는 전국 곳곳에 유명한 식당들이 산재해 있어 특정 지역의 전유물로 보기도 어렵습니다. 필자가 서울을 비롯해 경기 동두천 양주, 전남 담양 해남 강진, 광주 송정, 전북 익산 등지로 ‘떡갈비 찾아 삼만리’를 한 결과, 지역마다 형태나 미세한 맛의 차이도 분명 느낄 수 있더군요. 소고기가 귀하니 돼지고기로 만들기도 하고, 둘을 섞어서 내는 곳도 있습니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양념이 점점 강해지고 단맛도 증가하는 추세여서 안타깝습니다.
전통적인 언양불고기도 고기를 다져 석쇠에 구운 형태이니 넓게 보면 떡갈비의 부분집합에 속하고, 서양 음식인 햄버거 패티와 중화요리인 난자완스도 치아가 부실한 사람에게 그만인 ‘유사 떡갈비’라 할 수 있습니다.
오래전, 남도여행 길에 제법 유명하다는 떡갈비 식당에 들렀습니다. 마침 점심시간이 지난 한가한 때여서 아주머니들이 마루에 빙 둘러앉아 떡갈비를 다지고 계셨습니다. 그 도마소리가 ‘난타’ 공연 혹은 고찰의 법고 소리 이상으로 장엄했습니다. 떡갈비는 이와 잇몸뿐 아니라 귀로도 즐길 수 있는 음식이란 걸 그때 깨달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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