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연주의: 리좀이 화엄…’ 전시, 전북도립미술관 7월 25일까지
‘단종 역사화 시리즈’ 서용선 작가, ‘홀로코스트 연작’ 권순철 작가 등
자의식 지향하는 작품세계 선보여
서용선의 아크릴화 ‘계유년 그리기’는 2015년에 밑그림을 그려두고 중단했다가 지난해 말 작업을 재개해 최근 완성한 작품이다. 전북도립미술관 제공
“미술 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서양화’를 뭔가 극복해야 할 숙제처럼 생각했어요. 한국 화단에서 추상미술, 미니멀리즘이 대세를 이뤘을 때도 ‘스토리가 있는 작품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어요.”
7월 25일까지 전북 완주군 전북도립미술관에서 열리는 ‘신자연주의: 리좀이 화엄을 만날 때’ 기획전에 참여한 서용선 작가(70)가 기획자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강렬한 원색을 사용해 거친 질감의 그늘을 끌어내는 화풍으로 잘 알려진 그는 최근 완성한 ‘단종 역사화 시리즈’ 아크릴화 신작들을 내놓았다.
서 작가가 단종 이야기를 그리기 시작한 것은 1986년 개인적인 일로 슬픔에 빠져 지낼 때다. 친구의 권유로 찾아간 강원 영월군 강가에 앉아 단종이 물에 빠져 죽은 사연을 들으며 그 슬픔에 공감했다. 단종 일가의 처연한 삶을 담은 캔버스 한 곳에는 소파에 앉아 상념에 잠긴 작가의 자화상이 섞여 있다.
“다섯 살 때 동생이 죽었어요. 큰외삼촌이 조그만 관을 지게에 올리고 산길을 내려가는 모습을 봤어요. 죽음이 뭔지도 모르는 나이였는데 그 장면은 기억에 또렷이 남았어요. 어른이 돼 겪은 슬픔에 그 옛일과 단종 얘기가 오버랩 되면서 ‘뭔가 그려봐야겠다’ 작정하게 된 거죠. 내 모습은 ‘역사가 주관적 해석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반영해 넣었어요.”
서 작가와 함께 전시에 참여한 가나인(64) 강용면(64) 권순철(77) 정복수(64) 작가는 모두 상업미술계의 유행에 관심을 두지 않고 자의식이 지향하는 작품세계를 구축해 온 이들이다. 전시기획팀은 “예술에 대한 관념보다는 개인의 삶에서 출발하고 다듬어진 자신만의 조형 언어를 가졌다고 평가받는 작가들을 찾아가 참여 의사를 타진했다”고 밝혔다.
권순철의 유채화 ‘홀로코스트’(1992년).1992년 프랑스 파리에서 완성해 29년 만에 처음 공개하는 권 작가의 ‘홀로코스트’ 연작은 캔버스가 아닌 베니어합판에 그린 유채화다. 권 작가는 “캔버스 살 돈을 마련하기 어려울 때였다. 수용소에서 죽임을 당한 이들에 대한 자료사진을 참고한 것”이라고 했다.
“서양에는 왕과 귀족을 그린 그림이 많은데 난 부유한 사람들의 모습에서 매력을 느끼지 못해요. 나 자신이 힘들게 살아와서인지. 6·25전쟁 때 피란기차 짐칸에 쪼그려 앉아 본 강물 위 달빛이 아직 기억나요. 사람 얼굴을 그릴 때는 길에서 노인들 얼굴을 많이 찾아보고 다녔어요. 거칠고 볕에 그을리고 주름이 가득하지만, 주변을 압도하는 의연한 얼굴.”
정복수의 유채화 ‘존재학’(1991년).민속을 담은 고유의 미의식을 탐구해 온 가 작가, 피부라는 가면을 걷어낸 인간 본연의 모습을 충격적 이미지로 표현해 온 정 작가, 관계에 대한 고민을 소형 인두(人頭) 조각 1만여 점에 담아 20년 넘게 연결해 온 강 작가 모두 “서구의 미의식을 흉내 내는” 주류 미술계에 반발해 자신만의 미의식을 땅속줄기(리좀·rhyzome)처럼 확장해온 이들이다.
강용면의 ‘만인보-현기증’(2019년).작가들의 담백한 인터뷰 영상을 전시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출품작 33점 상당수는 높이 3m 이상의 대작들. 마음과 눈이 적잖게 후련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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