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은한 빛과 선으로 그린 산들…‘자연치유력’ 엿볼 수 있는 두 작품 [전승훈 기자의 아트로드]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30일 16시 53분


재 프랑스 서양화가 한홍수 화백(63)의 개인전 ‘결’이 서울 종로구 관훈동 토포하우스 제3전시실에서 31일부터 다음달 12일까지 열린다. 프랑스와 한국을 오가며 작업하는 한홍수는 은은한 빛을 발하는 추상적 풍경을 그린다. 풍경은 깊은 산으로 둘러싸인 계곡이나 파도가 치는 바다처럼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인체의 굴곡처럼 보이기도 한다. 결국 캔버스 위에 두께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 여러 겹이 겹쳐져 ‘결’을 이룬다.



그의 풍경화는 유화 물감 특유의 두터운 마티에르(질감)가 아니라 투명하고, 맨질맨질한 느낌이 마치 TV 평면 화면처럼 보인다. 부드러운 붓으로 수십 번의 붓질을 하며 화면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작가가 맑고 투명하고 깨끗한 화면을 만들고 싶어 오랫동안 작업한 결과물이다.



‘결’은 때로는 나뭇결처럼 시공간의 미세한 순서가 드러날 때도 있고, 물결처럼 파도가 높아질 때도 있지만 금세 다시 가라앉기를 무한히 반복한다. 유화인데도 동양화의 화선지처럼 결을 따라 번져 나간다. 한 작가는 캔버스 위에 유화물감으로 수회에 걸쳐 레이어(층)을 만들며 작업하지만, 그의 독특한 테크닉 덕분에 캔버스 위에 안료의 두께가 쌓여 ‘층’이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가장 아래(처음)의 레이어도 보이는 ‘결’의 느낌을 가능하게 한다.

그의 풍경화에서는 근경에 있는 사람의 신체가 중경에서 산과 계곡으로 변형되어 가다가, 원경에서 사라지곤 한다. ‘몽유도원도’를 좋아한다는 그의 작업은 ‘원근법’적인 접근이라기 보다는 ‘산점투시법(散點透視法)’ 또는 ‘자연 투시법’으로 설명된다. 즉 인간에서 자연을 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나 사물에서 인간을 보려는 노력으로 해석된다.

심은록 미술평론가(동국대 겸임교수)는 “‘숯의 화가’ 이배가 흔하디 흔한 청도의 숯을 파리에서 재발견했듯이, ‘결’은 한홍수 작가가 오랫동안 고민하고 실험하여 재발견해낸 한국의 고유한 개념이자 실천양식”이라며 “미술사적, 문화적, 사상적으로 ‘층’과 비교할 수 있는 ‘결’의 재발견은 디지털 개념이나 물질과도 잘 어울려, 디지털 원주민들에게도 반가운 소재”라고 평했다.

한편 한홍수 화백은 이시형 사회정신전문의와 함께 강원 홍천 힐리언스 선마을 효천 갤러리(겨울동)에서도 2인전 ‘카오스의 세 딸과 썸타는 두뇌’를 개최한다. 4월1일부터 6월30일까지. 산으로 둘러 쌓인 힐리언스의 효천갤러리는 숲의 ‘자연치유력’을 느끼며 힐링아트 미래아트를 경험할 수 있는 특별한 전시장이다.



전시장인 효천갤러리에 들어서면 이시형 박사가 그린 문인화가 가장 먼저 보인다. 한 줄로, 때로는 선 위에 굵은 선을 더하면서 일필휘지로 하려고 애쓰지도 않으며, 덤덤하고 간략하게 산의 윤곽이 이어지다가 사라진다. 그리고 이시형 박사의 힐링 철학을 요약하는 화제인 ‘나물먹고 물마시고/이보다 좋은 병원이 또 어디 있던가’가라는 말이 두 줄로 적혀 있다. 이어서 한홍수 작가의 ‘결’ 연작이 길고 긴 화랑을 따라 길게 이어진다.

이시형의 산의 윤곽은, 한홍수의 작업으로 이어지며 색을 입고 입체적인 형체를 띠게 된다. 공(空)에 색(色)이 입혀지고, 색이 다시 공으로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모습처럼. 이시형 박사가 던지는 화두에 한홍수 작가가 대답하고, 이번에는 관람객들에게 또다른 화두를 던지며 그렇게 산의 선 혹은 결이 이어진다.

이 전시는 ‘힐링아트, 미래아트’라는 주제로 이후 개최될 행사(국제포럼, 국제전 등)의 서막이다. 서로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힐링아트’와 ‘미래아트’를 함께 고민하며 대화하기를 청하는 것이다. 이 전시는, 그래서 두뇌(정신의학)과 카오스(예술)가 썸을 타며, 수많은 현대의 디지털 신화가 탄생될 것을 예고한다. 이 전시의 제목에 나오는 ‘카오스의 세 딸’은 들뢰즈의 개념에서 착안된 것으로 ‘예술, 과학, 철학’ 세분야의 대화를 추구한다는 의미이다.



정신과 의사이자 뇌과학자인 이시형 박사는 사단법인 세로토닌문화원장, 힐리언스 선마을 촌장, 한국자연의학종합연구원장으로서 뇌과학과 정신의학을 활용한 자연치유력 증강법을 전파해왔다. 실체가 없다고 여겨지던 화병을 세계적 정신의학용어로 만든 정신의학계의 권위자이다.

‘결’의 화가 한홍수는 1992년 파리로 유학을 떠난 이후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신표현주의 거장 A.R. 펭크를 사사했으며, 프랑스를 거점으로 유럽, 미국, 한국 등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 전시를 기획한 아트플러스갤러리 에스더김 대표는 “코로나19를 겪으며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는 반성과 함께 자연의 ‘치유’와 ‘힐링’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게 됐다”며 “이시형 박사-한홍수 화백의 ‘힐링아트 미래아트’전을 계기로 매년 혹은 2년에 한번씩 다른 분야에서의 전문가들이 한 명씩 전시 참여해 힐링아트에 대해 지속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심포지엄과 전시 등의 행사를 펼쳐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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