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 1일 목요일 맑음. 카세트는 죽지 않는다, 늘어날 뿐.
#344 Stryper ‘Always There for You’(1988년)
학창시절엔 왜 그리 숨기고 싶은 게 많았는지…. 너에게 써둔 수줍은 편지, ‘F 워드’가 미국 힙합보다 많은 성적표, 그리고 이스트팩 가방 깊이 넣어둔 직사각형의 그것.
직사각형이 정사각형보다 열등하던 시대 이야기다. 카세트테이프 말이다. 1만2000원짜리 정사각형 CD를 소니 플레이어에서 꺼내는 친구 앞에서 내 4500원짜리 테이프를 직사각형 아이와 워크맨에서 꺼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세월이 하수상하다. 며칠 전, A 선배가 아침부터 전화를 주셨다. “스무 살짜리 딸아이가 카세트테이프에 자기 목소리를 녹음해보고 싶대. 그런 장비 어디서 살 수 있니? 아니, 요즘엔 또래들 사이에 그런 게 힙하다나, 뭐라나.”
이제 더는 직사각형의 내 과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리라. 나도 사실 몇 년 전부터 다시 테이프를 모으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냥 괜한 허세에, 마니아들과 몰려다니는 재미에 마구잡이로 샀는데 이제 제법 선구안까지 생겼다. ‘음원, CD, LP가 널렸음에도 내가 이 음반을 굳이 테이프로 사야 하는 이유는?’ 절박한 물음표를 달고 음반점을 헤맨다.
그런 의미에서 명답 중 하나는 3년 전 구입한 미국 밴드 ‘스트라이퍼’의 ‘In God We Trust’ 테이프다. 100달러짜리 지폐 한가운데에 밴드 로고를 박아 넣은 표지. 묘수는 규격에 있다. 지폐는 직사각형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정사각형인 CD나 LP에는 지폐 하단의 ‘ONE HUNDRED DOLLARS’ 문구가 잘려(‘E HUNDRED DOLLA’) 있다.
대개의 경우, 디자인의 희생양은 소비자가가 낮은 카세트테이프이기 일쑤였다. 정사각형에 들어있던 드러머가 직사각형의 세로 디자인에서는 잘려 있다든가….(이래서 어딜 가든 가운데 자리가 중요하다.) 스트라이퍼는 직사각형의 통쾌한 역전 홈런인 셈이다.
못 말리는 카세트 예찬론자인 평론가 H는 이소라의 ‘눈썹달’을 꼽는다. 그믐달만 덩그러니 떠있는 CD나 LP와 달리, 카세트 버전에는 그믐달 아래 도시의 야경 앞에 선 이소라의 모습도 있어서란다.
1960년대에 카세트테이프를 발명한 네덜란드 엔지니어 루 오텐스가 지난달 별세했다. 그는 생전에 카세트테이프의 재조명 바람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젠 더 좋은 매체가 많은데 굳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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