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낙원의 밤’ 처절하고 처연한, 낭만적 갱스터 누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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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년 4월 6일 08시 09분


‘낙원의 밤’ 스틸. 넷플릭스 제공
‘낙원의 밤’ 스틸. 넷플릭스 제공
*영화의 주요 내용을 포함한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느릿느릿, 처절하고 처연하다. ‘낙원’과 ‘밤’이라는 이질적인 조합과 서정성이 어우러져 또 한 편의 누아르를 탄생시켰다.

5일 온라인 스크리닝을 통해 공개된 ‘낙원의 밤’은 ‘낙원의 밤’은 조직의 타깃이 된 한 남자와 삶의 끝에 서 있는 한 여자의 이야기를 그린다. ‘신세계’ ‘마녀’ 등을 연출한 박훈정 감독의 신작으로, 제77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 한국 영화로는 유일하게 초청된 작품이다.

영화는 범죄 조직의 에이스 박태구(엄태구 분)가 사랑하는 이들을 잃고, 그 배후로 점쳐진 라이벌 조직 북성파 보스에 피의 복수를 감행하며 시작된다. 모든 것을 잃은 태구는 수장인 양 사장(박호산 분)의 도움으로 러시아로 밀항하기 전, 제주로 피신한다. 태구는 무기상인 쿠토(이기상 분)와 쿠토의 조카 재연(전여빈 분)을 함께 만나지만, 조직들의 싸움으로 인해 가족을 잃은 재연은 태구의 등장을 못마땅하게 여긴다. 늘 무표정한 모습으로 거침없이 말을 내뱉는 재연은 농장에서 홀로 조용히 사격 연습을 하면서 두려움 없는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그 사이 태구의 복수가 실패로 끝났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북성파 보스가 살아난 것. 북성파 2인자 마 이사(차승원 분)는 ‘계산’을 치르기 위해 태구가 있는 제주로 직접 향한다. 태구는 이 소식을 접하지 못한 채 재연의 사연을 알아가고, 두 사람은 서툴게나마 서로를 이해해 나가며 조용히 감정을 싹 틔운다. 두 사람이 소소한 일상을 보낼 때만큼은 낙원의 섬 제주 바다에 윤슬이 일렁인다. 그러나 이는 잠시의 순간이다. 조카를 위해 현금을 모으던 삼촌 쿠토가 습격을 당한다. 태구에게도 위험의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재연은 태구를 필사적으로 말리지만 상황은 점점 더 극단으로 치닫는다.

‘낙원의 밤’은 정통 누아르를 표방하지만, 이야기에는 멜로 드라마가 녹아있다. 한계에 몰린 캐릭터들이 펼치는 가장 극단의 선택과 서정적인 분위기가 이질감 없이 적절한 조화를 이뤘고, 그 속에 처절함과 처연함이 묻어난다. ‘낙원의 밤’이라는 제목처럼, ‘낙원의 섬’ 제주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어둡고 칙칙한 야자수와 바다를 옮겨 담아 ‘밤’의 분위기를 살린 화면, 감정을 살리기 위한 피아노 선율도 탁월한 효과를 더한다.

다만 누아르의 클리셰는 그대로 이어진다. 조직간의 서열 싸움,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복수심, 선혈이 낭자하는 액션이 영화를 채우며 단순하게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하지만 누아르의 서정성에 집중한 ‘낙원의 밤’은 이들의 사연 많은 액션을 풀어내며 조금 더 애달프게 만드는 데 집중하며, 한없이 잔잔하다가도 상황이 한순간에 뒤바뀌기며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순간을 끊어내고자 한다. 특히 마지막에는 카타르시스를 안길 만한 압도적인 액션으로 이목을 사로잡는다.

태구와 재연, 마 이사 캐릭터도 눈길을 끈다. ‘낙원의 밤’에서 사실상 유일하게 러닝타임 내내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인 재연은 후드를 뒤집어 쓰고 화장기 없는 얼굴로 처절함과 극단성을 내비치는데, 전여빈의 수많은 사연이 담긴 듯한 그 눈빛이 재연의 행동을 자연스레 이해시킨다. 태구를 연기한 엄태구는 매서운 눈빛과 허스키한 목소리로 조직의 에이스임을 보여주면서도, 동시에 서툴고 내성적이고, 사랑하는 이들에게 한없이 따뜻한 모습을 보여주며 낭만적인 갱스터를 완성시킨다. 특히 태구와 재연의 클리셰적인 로맨스도, 삶의 끝에 선 이들의 상황과 이를 연기한 엄태구와 전여빈의 연기 합이 어우러져 감정을 설득시킨다.

마 이사로 분한 차승원은 분위기를 좌지우지하게 만든다. 직접적으로 행동하지 않으나, 완급을 조절하는 분노와 여기에 가미한 절제된 유머로 아슬아슬한 분위기를 형성해낸다. “계산”을 철저하게 여기는 모습과, 반듯하게 왁스로 넘긴 머리와 깔끔한 옷차림 역시 마 이사의 캐릭터성을 살린다.

벼랑 끝에 서 있기에 더욱 위태한 이들의 낙원이 더욱 처연하게 다가온다. 여기에 낙원의 섬 제주의 ‘낮’과 또 다른 이면인 ‘밤’ 같은 모습을 그려낸 풍광과 태구와 재연을 이어준 물회와 제주도 소주도 영화의 포인트다. 이들의 관계성을 만들어주는 요소임은 물론, 관객들에게도 무거운 분위기를 풀어주며 한 템포 쉬어가게 한다. 러닝타임 131분. 오는 9일 넷플릭스에서 공개.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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