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춘천시는 호반의 도시다. 그만큼 춘천 시내를 휘감고 있는 의암호와 춘천호 그리고 육지 속의 바다라 부르는 소양호가 있다. 춘천의 물 위에는 고구마섬, 고슴도치섬, 남이섬, 중도 등 경치가 빼어난 섬도 많다. 물 위로 해가 지는 모습은 언제나 장관이다. 호수와 섬 인근에는 30년 넘은 전통의 춘천인형극제, 춘천마임축제를 비롯해 춘천연극제, 춘천아트페스티벌 같은 유서 깊은 공연예술축제가 열린다.》
●문화도시 춘천, 인형극의 메카 꿈꾼다
춘천의 섬과 호반, 실내외 공연장에서 만나는 인형극은 어린이들만 보는 유치한 무대예술이라는 선입견을 단번에 깨뜨린다. 예술적 모양의 인형을 움직이는 첨단 기술과 정교한 빛으로 조절하는 조명, 환상적인 무대장치와 어우러지는 음악을 감상하다 보면 어른들도 인형극의 매력에 쏘옥 빨려든다.
올해 1월 문화체육관광부 주관의 법정 문화도시로 선정된 춘천시는 세계적인 인형극의 메카로 발돋움하기 위해 해외 교류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벤치마킹 대상은 국제인형극학교가 있는 프랑스 샤를빌. 국제인형극연맹(유니마·UNIMA) 본부가 있는 샤를빌은 인구가 겨우 5만도 안 되는 작은 도시이지만, 매년 열리는 인형극 축제에 전 세계 인형 극단 400여 개가 찾아오고 열흘간의 축제를 위해 온 마을이 1년 동안 준비를 한다.
춘천에 본부를 두고 있는 국제인형극연맹 한국지부(유니마 코리아)는 올해 33회째를 맞은 춘천인형극제를 지역의 축제를 넘어 세계적인 명물로 만들기 위한 국제교류에 나서고 있다. 춘천에서는 2022년 세계인형극도시연합(AVIAMA) 총회와 축제가 열린다. 또한 2025년에는 4년에 한 번 열리는 유니마 총회 유치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이 행사는 전 세계에서 70개국의 인형극 관계자 약 800명을 비롯해 국내외 예술가 1800여 명이 참여해 컨벤션과 전시, 인형극 공연이 펼쳐지는 지구촌 최대의 인형극 축제다.
이재수 춘천시장은 2014년 춘천인형극제와 유니마 코리아 이사장을 직접 맡을 정도로 인형극에 관심이 많다. 그는 “인형극을 통해 춘천을 세계적인 문화도시로 키우겠다”는 비전으로 국제인형극학교 설립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5년 전부터 프랑스 국립인형극학교(ESNAM) 등 세계적인 인형극 전문가 교수진을 초빙해 시범교육사업을 벌여 왔고 내년 4월 춘천인형극장 옆에 학교가 건립될 예정이다. 이 학교에는 아티스트들이 인형을 직접 제작하는 공방도 만들어져 관광 명소로 기대되고 있다.
●국제 인형극 네트워크와 유니마 코리아
유니마 총회 유치와 해외 교류 사업을 벌이고 있는 국제인형극연맹 한국지부(유니마 코리아)는 최근 온라인으로 ‘국제 인형극비디오 캠페인’을 벌였다. 전 세계 인형극인들에게 우리나라의 전통 한지를 보내주고 인형극 동영상을 보내 달라는 아이디어였는데 30개국 58개 팀이 수준 높은 작품을 보내오면서 동영상 조회수가 대박을 터뜨렸다. 코로나19로 무대를 잃은 아티스트들로부터 “팬데믹 봉쇄 속에서 창작과 소통의 기회를 마련해줘 고맙다”는 메일도 전 세계에서 쏟아졌다.
이번 공모전 캠페인을 위해 유니마 코리아 측은 강원 원주한지개발원과 업무협약을 맺고 다양한 색상의 한국 전통 한지와 훈민정음이 적힌 한지, 한지 공예품을 세계 각국의 예술가들에게 보냈다. 유럽과 아프리카, 미주, 아시아 각국의 인형극 아티스트들은 한지를 뭉쳐 인형과 해와 달, 무지개와 바위, 나무 같은 무대장치를 만들어냈다. 또한 한지의 반투명한 질감을 이용해 빛의 농도를 변화시키는 그림자극을 창작해 내기도 했다.
독일 팀의 ‘한지 판타지’는 베토벤의 피아노곡 ‘엘리제를 위하여’를 배경으로 실에 매달린 한지들이 춤을 춘다. 인도네시아 팀이 만든 인형극에서는 ‘한지 왕(King Hanji)’이 등장해 “뉴노멀 시대에, 집에 머물더라도 예술은 계속돼야 한다”고 외친다. 스위스 참가자는 요들송이 울려 퍼지는 깊은 산속 모습을 한지로 표현해 냈고, 아이슬란드 작가는 빙산과 흰 눈, 바다와 고래, 갈매기와 화물선 같은 아름다운 장면을 한지로 연출해 냈다. 음악과 인형, 자연이 어우러지는 인형극 동영상은 보는 것만으로도 치유가 되는 느낌이다.
그리스 아네모두르 인형극단 대표 바비스 코스티다키스 씨는 “한국의 전통 한지는 활용성이 좋고 질감이 너무 좋아서 작업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며 “한지를 그림자극장 스크린으로 사용해 모든 조명 효과를 만들었다”고 했다.
이번 공모전에 출품된 작품은 코로나19에도 희망을 잃지 않겠다는 예술가들의 메시지가 담겨 있어 감동을 더한다. “침묵이 찾아올 때, 그 순간 치유가 시작된다” “공연은 계속돼야 한다”는 메시지다. 한지로 연을 만들어 날리는 일본 팀이 “오겐키 데스카(건강하세요)”라고 외치는 장면도 콧등을 시큰하게 한다. 폴란드 팀의 알렉산드로스 모노칸딜로스 씨는 “12개월 동안이나 고립된 생활에서 불안감을 느꼈는데, 유니마 코리아의 인형극 동영상 캠페인 제안을 받았을 때 새로운 창작과 소통, 치유의 기회를 얻은 듯해 흥분됐다”고 말했다.
국제인형극연맹 한국지부 임정미 이사장은 “이번 공모전은 팬데믹과 봉쇄로 무대를 잃은 예술가들에게 창작과 소통의 기회를 만들어줘 국제적 호응을 얻었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 전통 한지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렸다는 데서도 큰 의의를 찾고 싶다”고 말했다. 또한 이번 공모전은 4월 19∼23일 온라인으로 개최되는 세계 유니마 총회에서 2025년 차기 총회 개최 후보지인 춘천을 세계에 알리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이메일과 동영상,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비대면 상시 접속을 통해 세계 예술가들이 자발적으로 공모전에 참여해 탄탄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유니마 코리아는 지난해 1년 동안 유네스코가 주최하는 ‘예술회복력(레질리아트)’ 캠페인에도 적극 참여하고, 회원국 13개국에 마스크를 1000장씩 보내며 홍보 활동을 펼쳤다. 마스크를 지원받은 유니마 회원국들은 유니마 코리아 로고가 새겨진 마스크를 쓰고 거리 공연을 펼치는 사진을 감사의 편지와 함께 보내왔다.
유니마 코리아는 국내에서도 인형극 영상공모전을 개최했는데 총 17개 팀이 참가해 ‘세계 인형극의 중심도시 춘천’의 면모를 세계에 알렸다.
●가볼 만한 곳=올해 33회째를 맞은 춘천인형극제는 1989년 1세대 문화기획자인 고 강준혁선생(1948∼2014)이 호반의 도시 춘천에서 기획한 축제다. 2001년 개관한 춘천인형극장은 국내 유일의 인형극 전용극장이다. 특히 북한강이 흐르고 있는 춘천인형극장 뒤편 야외극장에서 바라보는 낙조는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특히 덱(deck)이 딸린 야외 카페가 오픈하면서 밤에도 명소가 되고 있다.
춘천인형극박물관에는 국내외 200여 점의 인형극 인형이 전시돼 있고 막대인형극, 손인형극, 줄인형극, 그림자인형극 등 다양한 인형의 작동 원리를 가르쳐주는 체험 공간도 마련돼 있다. 춘천인형극장 근처에 있는 육림랜드는 소나무 숲속에서 일일 캠핑을 즐기고, 놀이공원과 동물원이 있어 가족들의 나들이 장소로 적합하다. ‘춘천애니메이션 박물관―토이로봇전시관’에는 아이보다 어른들이 더 좋아하는 로봇태권브이를 비롯해 추억의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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