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의 탄생:케임브리지 세계사 1/데이비드 크리스천 등 지음·류충기 옮김/소와당·3만 원·540쪽
대학원에서 북한학 학위논문을 쓸 때 심사위원들로부터 빈번히 지적받은 사항은 ‘좁혀서’ 보라는 것이었다. 예컨대 1958년 중국 인민해방군의 북한 철수 직후 북-중 관계처럼 특정 국면을 집중적으로 파고들라는 주문이었다. 신문사에서 학술기자로 일하면서 접한 인문학 분야의 학술논문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치 않았다. 학자들은 전문화된 분야에서 다양한 연구를 수행하지만 이를 아우르는 큰 흐름에 대해선 대체로 말을 아낀다. 학문적 엄밀성을 추구하는 것이겠지만 분과학문이 대중과 유리되는 현상을 낳는 데 일조한 측면을 부인하긴 힘들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출판부가 의욕적으로 기획한 이 책은 세계사 연구에서 이 같은 분과학문의 한계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다. 유발 하라리와 재러드 다이아몬드로 대표되는 ‘빅히스토리’의 연구 방식과도 가깝다. 총 18권(한국판)에 걸쳐 약 200편의 논문을 담고 있는 이 세계사 시리즈는 문자기록이 없는 구석기시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시간대를 다룬다. 이를 위해 고고학, 언어학, 지질학, 생물학, 인류학, 미술사학 등 역사학 이외의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이 공동 필진으로 참여했다.
예를 들어 1권에선 고인류가 100만 년 전 동아프리카에서 출발해 유럽, 아시아 등지로 이동한 과정을 학제 간 연구 성과를 토대로 자세히 보여주고 있다. 이때 핵심 변수는 생태환경의 급격한 변화였다. 19만 년∼13만 년 전 동아프리카에서의 기후변화는 적도 이남과 이북을 오가는 주기적인 이주를 촉발했다. 그런데 생태계와 인간 이주의 상관관계는 늘 일방통행은 아니었다. 호주의 자이언트 캥거루, 유라시아의 매머드, 아메리카 대륙의 나무늘보처럼 해당 지역으로의 집단 이주는 특정한 대형 동물의 멸종을 가져왔다. 특히나 농경과 문자, 말(馬)이 도입된 후 제국이라는 강력한 정치체가 등장하자, 강제 이주가 빈번하게 이뤄졌다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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