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스토이의 소설 ‘전쟁과 평화’ 중 일부를 각색해 사랑과 고뇌를 다룬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은 한때 인터넷을 달궜던 ‘밈(meme·유행하는 특정 문화 요소나 콘텐츠)’처럼 진짜로 무대를 뒤집어놓은 작품이다. 무대는 1981년 리틀엔젤스예술회관으로 개관해 올해로 40주년을 맞는 유니버설아트센터. 고풍스러운 매력을 가진 이 전형적 프로시니엄 공연장(액자 형태의 건축 구조로 무대를 향해 한 방향으로 정렬된 객석으로 제작된 극장)은 ‘그레이트 코멧’과 만나 완전히 탈바꿈했다.
붉은 빛깔의 7개의 원과 반원을 겹쳐 구성한 무대에서 배우들은 원 안팎으로 설치된 객석 사이를 휘젓고 다닌다. 궤도를 떠돌다 부딪치고 폭발하는 혜성처럼 서로 충돌하고 화합하며 흥겨운 춤과 음악으로 인생을 노래한다. 지난해 국내 초연이 예정됐지만 팬데믹으로 한 차례 연기 후 드디어 지난달부터 빛을 봤다.
이 과격하면서도 세련된 난장은 김동연 연출가(46)의 손을 거쳐 완성됐다. 장르를 넘나들며 인기작을 쏟아낸 베테랑인 그를 8일 서울 광진구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만났다. 김 연출가는 “배우도 미치고 관객도 미쳐야 하는 작품이다. 방역 수칙을 지키면서 표현하려던 흥을 약간 줄이느라 아쉬웠지만 ‘반만이라도 미치는’ 공연을 올릴 수 있어 다행”이라고 했다.
작품이 ‘미친’ 공연인 이유는 원작의 태생과도 관련이 있다. 미국 출신의 원작자 데이브 말로이는 톨스토이의 소설 ‘전쟁과 평화’를 읽다 인상 깊었던 2권 5장의 70페이지 분량을 뮤지컬로 제작했다. 2012년 오프브로드웨이에서 첫선을 보인 무대는 공연장 대신 펍, 바, 식당 등을 오갔다. 배우들이 밥 먹고 술 마시는 관객 테이블 사이를 오가며 노래했다. 2017년 브로드웨이에서 공연 후 토니상을 휩쓸었다. 주인공 ‘피에르’(홍광호 케이윌) ‘나타샤’(정은지 해나) ‘아나톨’(이충주 박강현 고은성)이 겪는 사랑과 고뇌는 카타르시스를 전했다.
음악과 대본만 유지할 뿐 무대, 동선, 조명, 의상 등은 한국에서 전부 새롭게 태어났다. 결말에도 약간의 변화를 줬다. 배우들은 모두 악기 연주, 연기, 노래를 병행한다. 김 연출가는 “전통적 공연장에서 관객이 경험할 수 있는 최고치의 참여형 공연을 구현하려 했다”며 “미국인이 해석한 러시아 문학을 현대적 한국의 코드로 재해석하며 감정, 에너지에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모두가 처음 겪는 신선한 형태의 공연에 제작진, 배우가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라는 말을 많이 했다. 동시에 첫 공연을 마치고 “고생했다, 고맙다”는 위로도 서로에게 유독 많이 건넸다고 한다.
극을 이끌어가는 다른 핵심 축은 음악이다. 원작자는 자신의 공연을 ‘일렉트로 팝 오페라’라는 별칭을 붙였다. 19세기 러시아 전통음악을 기반으로 EDM, 힙합 등 여러 장르의 넘버가 뒤섞였다. 김 연출가는 “주·조연 배우, 앙상블 모두가 한 음악 안에서 즐기는 모습을 보면 정말 신난다”며 “김문정 음악감독이 무대 중앙에서 배우처럼 춤추는 장면은 제가 적극 권장했다”며 웃었다.
그는 순수한 인간의 모습을 노래하는 ‘그레이트 코멧’처럼 “오래도록 공연하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이번 작품이 그의 머릿속에 깊게 박힌 건 관객의 박수 소리 때문이다.
“신나도 환호성을 못 지르고 에너지와 흥을 눌러야 하니 얼마나 힘드시겠어요. 한국 관객이 이렇게 박자에 맞춰 ‘칼박수’ 치는 걸 보고 매일 놀랍니다. 하하.” 5월 30일까지, 5만∼14만 원, 8세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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