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밴드 ‘파란노을’ 익명 인터뷰
방구석 음악가서 글로벌 혜성으로… 한때 올 세계전체앨범중 평점 1위
“우울한 노래 만드는게 치유 과정… 누가 뭐래도 제 음악 죽지않아요”
“20대 초반 학생이라고만 써주세요. 이름도 안 돼요. 그냥… 창피해서요. 제가 음악 한다는 거, 주변 사람들 아무도 모르거든요. 부모님도요. 부모님 안 계실 때만 제 방에서 녹음하니까….”
13일 오후에 만난 음악가 ‘파란노을’이 말했다. 최근 세계 대중음악계에 혜성처럼 나타난 인물. 세계 음악 마니아의 리뷰와 평점으로 순위를 매기는 미국의 유명 사이트 ‘레이트 유어 뮤직’에서 파란노을의 2집 ‘To See the Next Part of the Dream’(2월 발매·사진)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올 들어 지구상에 나온 모든 앨범을 통틀어 종합 4위에 올라 있다. 한때 1위도 찍었다. 미국 음악매체 ‘피치포크’도 평점 8.0(10점 만점)을 주며 극찬했다.
“과대평가죠. 시간이 지나면 내려갈 거예요. 요즘 패배주의를 노래하는 사람이 별로 없잖아요. 코로나 시대라서 우울한 사람들이 공감했나 봐요.”
덤덤하게 말하는 파란노을의 음악은 주류의 미학에서 탈주한다. 웅얼거리는 보컬, 왜곡돼 지글대는 음향, 자기혐오의 노랫말….
“(호평이) 신기하면서도 무서워요. 다수는 제 노래를 지독히 싫어할 게 뻔하거든요.”
그러나 아름다운 화성과 선율, 서사적 구성을 꿈결처럼 펼쳐내는 파란노을의 미학은 시궁창을 뚫고 피어난 꽃향기와 유사하다. 그는 침실 컴퓨터 앞에 앉아 가상 악기로 모든 것을 연주했다고 했다. 심지어 보컬은 전부 휴대전화를 손으로 들고 노래해 녹음했다고.
“방에 마이크 같은 걸 두면 부모님한테 들키잖아요. 고교 3년 동안 정규 앨범 12장 분량을 익명으로 인터넷에 냈는데 아무도 안 들어줬어요. 저의 나약함을 노이즈로 감싸 버리려 했는데…. 그래도 자꾸 새어나와요. 저의 나약함이.”
“악기를 못 다루는 데다 소심한 성격 탓에” 그는 공연을 해본 적도 없다. 방구석 음악가는 인터넷으로 인디 음악, 웹툰, 애니메이션, 영화를 접하며 상상의 나래를 키웠다. 이와이 슌지 감독의 ‘릴리 슈슈의 모든 것’(2001년) 대사는 노래 여기저기에도 삽입했다.
“평소에 우울한 생각을 달고 다니는 사람들이 들어줬으면 해요. 왜냐면 제가 그 사람이거든요. ‘다 잘될 거야’ 유의 음악은 제게 위로가 안 됐어요. 우울한 노래를 만드는 과정이 제겐 치유의 과정이에요.”
익명 음악가의 마지막 말은 영화 대사처럼 들렸다.
“제 음악을 좋게든 나쁘게든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제 음악은 죽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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