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오후 서울 서초구 한 건물 지하. 음악 바(bar)가 촬영장으로 변했다. 1980년대 목조 거실 냄새를 풍길 법한 구식 오디오가 피라미드처럼 쌓인 한쪽 벽면을 배경으로 그룹 ‘레드벨벳’의 슬기(27)와 김작가 음악평론가(46)가 마주 앉았다. 10대의 카메라가 두 사람을 향했다.
16일부터 매주 금요일 오후 9시 30분 유튜브로 공개되는 ‘슬기로운 음악대백과’(슬음대)는 예능과 다큐멘터리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음악 콘텐츠다. 케이팝 아이돌과 평론가가 함께 진행하는 프로그램. 누군가는 미스매치로 볼 1990년대생과 1970년대생의 조화가 슬음대의 ‘킬링 포인트’다. 촬영장에서 만난 두 사람도 긴장과 설렘이 교차하는 눈치였다.
“아마 한국 방송과 유튜브 콘텐츠 역사상 가장 이상한 조합일 것 같아요. 참고할 전례도 없으니 무에서 유를 만들어야겠죠. 솔직히 슬기 씨 만날 때 영국 밴드 ‘오아시스’ 만났을 때보다 더 긴장했어요.”(김작가)
“저는 사회자로 나서는 것 자체가 처음이라 떨렸어요. 평론가분을 직접 만나본 것도 처음이에요. 레드벨벳 음악을 호평해 주시는 글들만 감사히 보고 있었죠. 작가님이 첫 만남 때부터 편하게 해주셔서 다행히 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슬기)
두 사람은 198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여러 시대를 풍미한 다양한 장르의 음악가를 초대해 가요사 뒷이야기를 탐구할 예정이다. 첫 게스트는 가수 김완선 씨다.
“김완선 선배님은 제가 제안했어요. 앞으로 서태지, 이문세, 이정현 선배님도 모시고 싶습니다.”(슬기)
레드벨벳의 리드보컬인 슬기는 어려서부터 음악적 호기심이 남달랐다고 했다.
“음악 마니아인 아버지가 들려주는 LP를 즐겨 들었고, 유치원 때는 TV 앞에서 카세트테이프 녹음버튼을 눌러 저만의 인기가요 모음집을 만들기도 했어요.”(슬기)
“보아, 비욘세 언니”의 영상과 다큐멘터리를 파고들며 아티스트의 성장 과정을 좇곤 했다는 슬기에게 슬음대는 진행자 못잖게 시청자로서 의미도 크다.
“저도 요즘 주위의 도움을 받아 작곡을 시작했어요. 아직은 ‘아가 단계’지만요. 슬음대를 통해 받을 자극과 자양분을 제 음악에 녹여내 보려 해요.”(슬기)
“레드벨벳은 SM엔터테인먼트의 여성 그룹 역사에서 새로운 변증법을 보여준 팀이라고 봐요. 뛰어난 표현력으로 음악성과 대중성을 다 잡았으니까요. 슬기 씨와 레드벨벳에게 아이돌에서 아티스트로 알을 깨고 나아간 김완선, 이상은 씨의 이야기를 꼭 소개하고 싶어요.”(김작가)
김작가는 “한국 음악은 영화에 비해 자료 정리가 잘 안돼 있다. 옛날 가수들의 추억팔이 성격 예능으로만 소비되는 경향이 강했다”면서 “이를테면 1990년대 가요에 새로운 소리를 넣기 위해 실험한 과정은 비치 보이스나 핑크 플로이드 못잖았는데, 그런 안 알려진 얘기들을 들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슬음대의 제작은 올 초 SBS TV 10부작 ‘전설의 무대 아카이브K’를 제작한 콘텐츠 회사 ‘일일공일팔’이 맡았다. 이곳이 앞으로 선보일 여러 음악 시리즈 중 첫 타자가 슬음대다. 김작가는 “추억의 대상에 머물기 쉬운 게스트들의 음악 세계를 지금 시대의 음악 팬에게 전달하는 친절한 통역가를 자임하겠다”고 말했다.
“한국 음악 하면 케이팝만 생각하는 해외 음악 팬들이 슬기 씨를 통해 한국 음악 역사에 대한 정보를 많이 얻어 갔으면 합니다.”(김작가)
“슬기로운 음악대백과라니, 엄마 아빠가 제 이름을 참 잘 지어주셨네요! 음악을 사랑하는 분이라면 누구나 손쉽게 보고 접할 수 있는 콘텐츠가 되도록 열심히 돕겠습니다.”(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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