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노난범(衆怒難犯)’이란 말이 있다. 분노하여 일어선 대중을 당해내기 어려우니, 공분 살 일을 경계하라는 뜻이다. 이 말의 위력은 4·7 재·보궐선거에서 여실히 증명됐다. 내 탓 아닌 남 탓에다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에 젖어 있던 여권이 참패한 뒤 고개를 숙였다.
시인 나태주는 ‘행복’이란 시에서 행복의 세 가지 조건 중에 첫째가 ‘저녁 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이라고 노래했다. 우리 현실은 어떤가. 집값과 전셋값이 폭등하는 상황을 눈 뜨고 바라보면서 내 집 장만의 꿈을 버리다시피 한 2030세대가 넘쳐난다. 그들에게 이번 선거는 어쩌면 ‘화병(火病)을 내리는’ 약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입바른 소리에 귀 막고, 민심을 귀넘어들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몸으로 보여줬다.
‘귀넘어듣는다’는 건, ‘귓전으로 듣는다’와 같은 뜻으로 남의 이야기를 아무렇게나 흘려듣는 것을 말한다. ‘귓등으로 듣다’와 닮았다. 이와 반대로 정신을 바짝 차려 주의 깊게 듣는 것은 ‘귀담아듣는다’, ‘귀여겨듣는다’고 한다. ‘눈여겨보다’와 통하는 말이다.
귀를 볼 때면 드는 의문이 있다. 생일을 왜 ‘귀빠진 날’이라고 하며, 잘난 사람의 생김새를 말할 때 왜 ‘이목구비(耳目口鼻)가 번듯하다’고 할까. 모르긴 몰라도 보고 말하는 것 못잖게 ‘잘 듣는’ 자세를 중히 여겼기 때문에 귀를 앞세운 건 아닐까.
그러고 보니 귀의 세계에도 재미난 표현과 낱말이 많다. ‘귀썰미’와 ‘귓불’, ‘귓맛’, ‘귀고프다’ 등을 꼽을 수 있다. 잘 알다시피 한두 번 보고 그대로 해내는 재주를 눈썰미라고 한다. 그렇다면, 한 번 들은 것을 그대로 흉내 내는 재주가 귀썰미다.
‘귀가 크다’고 할 때의 귀는 귓바퀴를 말하는데, 이의 가장자리를 귓가나 귓전이라고 한다. 귓바퀴의 아래쪽에 붙어 있는 살은 ‘귓불’이다. 한데 많은 이가 ‘뺨’을 나타내는 ‘볼’을 연상해서인지 ‘귓볼’이라고 잘못 쓰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귓구멍 속에 낀 때인 ‘귀지’를 파내는 도구를 두고도 ‘귀쑤시개, 귀지개, 귀후비개’ 등 입말이 다양하다. 바른 표현은 ‘귀이개’다.
‘귀고프다’란 말을 들어보셨는지. 장승욱 씨는 ‘재미나는 우리말 도사리’에서 귓맛이 나는 소리, 옳은 소리를 마음껏 듣고 싶을 때 ‘나는 몹시 귀가 고프다’고 말하면 된다고 강변한다. 배고프다면 모를까, 귀고프다니. 갸우뚱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귀고프다는 ‘실컷 듣고 싶다’는 순우리말로 오픈사전에 올라 있다. 그러니까 귀가 고픈 건, 쓸데없는 소리나 거짓말, 헛소리가 아닌 바르고 옳은 소리로 귀를 채우고 싶다는 것이다. 귓맛은 어떤 좋은 소리나 마음에 담을 만한 이야기를 듣고 느끼는 재미를 말한다.
우리 사회에 넘쳐나는 불건전한 ‘갖은소리’를 잠재울 ‘쓴소리’가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남 탓이 아니라 내 탓을 하는, 그런 멋진 귓맛 한번 느껴보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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