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앰비언트 뮤직’ 제작 동영상 인기
연주되는 악기-장비 하염없이 재생… 빗소리-실시간 생활소음 섞기도
“새로운 도전… 신인시절처럼 설레”
벚꽃나무 가지 위에 워크맨이 놓여 있다. 카세트테이프의 검은 마그네틱 필름이 꽃송이와 함께 봄바람에 흩날린다. 테이프에 미리 녹음된 몽롱한 신시사이저 반복음은 바람 소리, 행인들의 대화 소리와 실시간으로 섞여 묘한 시청각 경험을 제공한다. 유튜브 채널 ‘Analog invasion’에 20일 올라온 영상 ‘tape loop with Cherry Blossoms(벚꽃과 테이프 루프)’다.
음악 팬들 사이에 ‘불멍’(불보며 멍 때리기) 대신 ‘앰멍’이 뜨고 있다. 앰멍은 앰비언트 뮤직(ambient music) 제작 과정을 멍하니 감상하는 트렌드다. 편안한 환경음악을 뜻하는 앰비언트 뮤직은 유튜브에 많았다. 새로운 앰멍 콘텐츠는 조금 다르다. 음악과 따로 노는 아름다운 자연 풍광 대신 그 음악이 현재 연주되는 장비와 악기를 실시간으로 하염없이 카메라로 보여준다. 코로나 상황에 대외 활동이 줄어든 음악가 입장에서도 실내에서 쉽고 재밌게 취미처럼 제작할 수 있어 인기다.
서두의 벚꽃 영상을 올린 이는 음악가 류정헌 씨(44). 록 밴드 ‘코어매거진’ ‘에이치얼랏’의 기타리스트이지만 최근 앰멍에 참여했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에 ‘아날로그 인베이전’ 계정을 열었다. 부산 마린시티의 비 오는 해변, 석쇠에 양대창 굽는 장면을 배경으로 워크맨을 배치한다. 미리 기타나 신시사이저를 연주해 테이프에 녹음해둔 것을 재생해 현장음과 합친다. 멍하니 보고 있으면 부조화의 조화가 시청각을 자극한다.
“코로나 이후 자연스레 작업실에 틀어박혀 새로운 작업에 도전하게 됐어요. 음악이란 걸 처음 시작했을 때에 비견할 만큼 큰 설렘을 느낍니다.”(류정헌)
류 씨의 앰멍 제작은 꽤 고난도의 공정이다. 어렵게 구매한 공테이프에 악기를 연주해 5∼10초짜리 루프(loop·반복 악절)를 녹음한다. 사전 작업이 더 힘들다. 공테이프를 드라이버로 해체해 마그네틱 필름(소리가 기록된 부분)을 원하는 길이로 정확히 잘라 붙여야 한다. 그는 “초당 약 4.75cm가 필요한데 10초짜리는 47.8cm로 만드는 식으로 적절한 여유를 둬야 원하는 소리가 난다”고 귀띔했다. 미국, 영국, 일본 등지에서 타스캠, 마란츠, 파나소닉의 카세트 플레이어와 녹음기도 샀다. 그는 “벚꽃 영상의 경우 바람에 마그네틱 필름이 날리면서 헤드(소리를 읽는 부분)를 불규칙하게 지나가는데 그 순간에만 얻을 수 있는 멋진 소리가 있었다. 자연과의 협업인 셈”이라고 했다.
카세트테이프보다 앰멍에 더 자주 쓰이는 장비는 기타 이펙터 페달이나 모듈러(modular) 신시사이저다. 외양이 화려하고 색색의 연결선이 있어 은근히 보는 맛이 있다. 전자음악가 허동혁 씨(40)는 베토벤, 그리그, 에리크 사티 등의 클래식을 모듈러 신시사이저로 연주한 영상을 즐겨 올린다. 허 씨는 “완벽한 창작음악을 선보이는 것보다 부담 없이 즉흥연주도 섞어 제작할 수 있어 좋다. 취미이자 자기 홍보 수단도 된다”고 말했다.
해외에서도 야외 언덕이나 실내 창가에 장비를 늘어놓고 연주하는 앰멍 영상이 넘쳐난다. 이대화 대중음악평론가는 “책상 하나에 올라가는 작은 하드웨어 음악장비가 요즘 대세인 데다 스마트폰이나 DSLR 카메라 한 대면 쉽게 촬영할 수 있어 인기”라며 “디지털 시대이지만 아날로그 악기를 동경하는 트렌드, 코로나 시대에 아마추어 음악가 지망생이 늘고 있는 경향도 이런 콘텐츠의 인기를 추동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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