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리의 순자를 보고 이 그림이 생각났다… 베르트 모리조 ‘부엌에서’ [김민의 그림이 있는 하루]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4월 25일 11시 00분


코멘트
영화 ‘미나리’의 순자(윤여정)를 보며 저는 엄마와 부엌이 생각났습니다.

언젠가 엄마는 부엌에 커다란 원목 식탁을 놓고 싶어했습니다. 식구들이 다 모여 밥 먹을 일도 많지 않은데 말이죠. 한동안 온라인으로 식탁을 들여다보고, 또 중고 매물로 나온 테이블도 직접 보러 가보던 엄마는 이리저리 줄자로 치수를 재어보더니 결국 커다란 식탁은 포기했습니다. 그러기엔 부엌이 좁았거든요.

식탁뿐인가요. 수납공간, 화구 개수 등등 여러 가지가 성에 차지 않는 부엌입니다. 그래도 엄마는 포기 않고 그곳을 알뜰살뜰 싱싱한 활기가 넘치는 곳으로 만들어 냈습니다. 부엌에 원래 있던 식탁은 어느 날 흰 페인트로 깨끗하게 칠하고 예쁜 식탁보를 깔았고요, 산책하다 주운 꽃도 화병에 꽃아 올려 두었습니다. 단정한 테이블 매트도 기분에 따라 바꿔 놓으시기도 합니다.

집 싱크대 앞 작은 창문엔 항상 새싹을 틔운 각종 씨앗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습니다. 먹다 남은 조그만 씨앗도 버리기 아까워하는 엄마가,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를 물그릇 삼아 차린 작은 배양소입니다. 저는 그걸 보면서 작은 것들도 저버리지 않는 엄마의 애정에 놀라곤 합니다.

영화 속 순자는 낯선 미국 땅에 가서, 뱀이 나온다고 들어가지 말라고 했던 개울가에 겁 없이 들어가 미나리를 심습니다. 제이콥(스티븐 연)이 ‘안 되는 걸 되게 하라’는 막무가내 정신으로 척박한 땅에 덤벼들었다면, 지혜로운 순자는 흙과 물의 맥락을 읽고 미나리가 싹을 틔우게 했죠.

가족은 물론 말 못하는 대상에게도 늘 애정으로 최선을 다하는 엄마의 생명력을 저는 영화 ‘미나리’에서 느꼈답니다. 그리고 미나리를 예쁘게 쓰다듬는 순자의 모습을 보면서 이 그림이 떠올랐습니다.

○ 미나리 속 ‘순자’와 베르트 모리조
베르트 모리조, 부엌에서(In the Dining Room), 1886, 미국 내셔널갤러리 소장.
베르트 모리조, 부엌에서(In the Dining Room), 1886, 미국 내셔널갤러리 소장.


오늘 감상할 그림은 프랑스 인상파 작품입니다. 여러분 인상파라고 하면 보통 모네나 마네, 고흐, 르누아르 같은 작가가 생각나시죠? 이 작품의 작가는 베르트 모리조(1841~1895)입니다.

작가 이야기를 하기 전에 그림부터 먼저 볼까요. 앞치마를 두른 여인이 부엌 한 가운데 서 있는 모습입니다. 과감하게 그어 내린 강렬한 붓 터치가 아주 인상적인 그림이죠. 여성의 다소곳한 포즈를 보면 예쁜 그림이라 착각할 수도 있습니다만, 하나하나 뜯어보면 부엌이라는 공간을 휘어잡고 있는 당당한 여자의 모습이 드러납니다.

먼저 이 그림에서 가장 눈길을 사로잡는 부분이 뭔지 살펴볼게요. 보통 우리의 눈은 무의식 중에 가장 밝은 곳을 바라보게 되어 있는데요, 이 그림에서 가장 밝은 곳은 바로 여성의 앞치마입니다. 하얀 색채의 앞치마를 아주 힘 있는 붓질로 칠해 뻣뻣한 느낌이 들 정도죠.

이 앞치마를 중심으로 작가는 공간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왼쪽 캐비닛을 한 번 볼까요. 사이즈로만 보면 그림 중간의 여인보다 더 크죠? 하지만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우선은 어둡게 색채를 죽였고 세부적인 묘사도 줄였습니다. 게다가 아래 부분 수납장을 열어 두고, 그 위에 흰 천을 걸어 가운데로 시선이 흐르도록 했습니다.

눈길은 자연스럽게 오른쪽으로 흐릅니다. 그리고 받침대가 보일락 말락 아슬아슬하게 그려진 테이블이 보이시죠? 의자도 다리 하나가 없어서 움직이는 듯한 리듬을 자아냈습니다. 그리고 과감하게 오른쪽 공간에 짧게 벽을 만들어 시선이 분산되지 않도록 하고 있지요.

하이라이트는 여성을 향해 다가가고 있는 강아지입니다. 바닥과 거의 한 몸이 될 정도로 흐릿하게 묘사되어 있지만, 푸른색 선을 활용해 강아지 형체만 간신히 남겨두었구요, 움직이는 듯한 모습을 만들어 역시 가운데 여인으로 시선이 쏠리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창문 밖 붉은 집과 여인의 왼쪽 흐릿하게 그려진 프라이팬 또한 이러한 균형을 맞춰주는 오브제들로 볼 수 있겠죠.

이 그림이 재밌는 이유를 눈치 채셨나요? 바로 여성이 모델이나 그림 속 오브제가 아닌 공간의 중심으로 당당하게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보통 인상파 화가들의 작품에서 여성은 그림을 위한 여러 대상 중 하나로 비춰진 경우가 많았어요. 대표적인 것이 드가의 무용수들이죠.

에드가 드가, 무대에서 리허설, 1874, 파리 오르세미술관 소장.
에드가 드가, 무대에서 리허설, 1874, 파리 오르세미술관 소장.


물론 드가 또한 발레리나의 신체적 요소를 활용해 절묘한 공간 감각을 보여주었습니다. 다만 남성이 여성을 바라볼 때 가질 수 밖에 없는 한계를 모리조의 그림은 극복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부엌은 당시 남성의 시각에선 ‘여자가 일하는 곳’에 불과했겠지만, 모리조의 그림에선 마치 ‘미나리’속 순자와 어머니의 부엌처럼 활기찬 공간으로 살아나고 있지요. (물론 지금 세대에게 부엌은 여자만의 공간은 아닐 것입니다.)

모리조는 어떤 사람이었기에 이런 그림을 그렸던 걸까요?

○ “가장 인상파다운 작가”
모리조의 프로필에서 가장 재밌는 건 그녀가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1732~1806)의 조카증손녀라는 사실입니다. 프라고나르는 로코코 시대 프랑스를 풍미했던 화가이고, ‘그네’라는 그림이 잘 알려져 있습니다. 여성인 모리조가 19세기에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것도 특권층의 자녀로서 누릴 수 있는 드문 기회였습니다.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 그네, 1767, 런던 왈라스컬렉션 소장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 그네, 1767, 런던 왈라스컬렉션 소장


그녀의 아버지는 프랑스 셰르의 도지사였고, 어머니가 프라고나르의 조카 손녀였습니다. 당시 상류층 자녀들은 예술 교육을 받곤 했는데, 모리조가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것도 아버지의 생일에 드로잉을 선물하기 위해서였다고 해요. 그러다 다른 자매들은 포기하는 중에도 꾸준히 그림을 그리면서 살롱전에 입상해 전업 화가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그런데 모리조는 아카데미 화가의 길을 포기하고, 인상파 작가와 교류하며 1876년부터 1886년까지 매년 인상파전에 출품하며 열정적으로 참여합니다. 당시 인상파 작가들은 아카데미에서 아주 무시하고, 비난 받는 아방가르드였다는 걸 염두에 둔다면 모리조가 얼마나 대담한 선택을 한 것인지 가늠할 수 있겠습니다. 자신을 믿고 밀고 나간 그녀의 선택이 작품도 시대를 넘어 살아남게 만든 것이죠.

에두아르 마네, 부채를 든 베르트 모리조, 1874년
에두아르 마네, 부채를 든 베르트 모리조, 1874년


그녀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공간을 휘어잡는 힘은 어디서 나온 걸까요? 모리조가 장 밥티스트 카미유 코로(1796~1875)에게도 그림을 배웠다는 것을 하나의 근원으로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코로는 인체 드로잉에서 시작해 풍경으로 나아가 많은 수작을 남긴 작가로, 역시 자연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것을 넘어 그곳의 부는 바람과 기운까지 포착하는 공간을 읽는 작가입니다.

모리조의 그림에서도 단순히 사진을 찍듯 부엌을 남긴 게 아니라, 그 공간을 활기차게 휘어잡고 있는 당당한 여인감의 생동감이 느껴지는 것의 근원이 이런 것이 아닐까 추측해보는 것입니다.

모리조 스스로도 자신의 능력을 알고 때론 답답함을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1890년 그녀는 자신의 노트에 이렇게 적었다고 해요. “나는 여자를 자신과 동등하게 대하는 남자를 본 적이 없다. 내가 남자보다 못한 것이 없다는 걸 알기에, 내가 원하는 건 그저 동등한 대접일 뿐인데도 말이다.”

빈센트 반 고흐, 밤의 카페, 1888년, 예일대 미술관 소장.
빈센트 반 고흐, 밤의 카페, 1888년, 예일대 미술관 소장.


미술사가 전하현은 저서 ‘인상주의’(생각의 나무)에서 베르트 모리조를 “사실적 느낌 그대로를 살린 가장 인상파적 기법에 충실했던 작가”라고 설명합니다. “고흐나 고갱은 일본과 남태평양의 영향을 받은 과장된 표현을, 로트렉 드가 기요맹과 모네는 주관성을 강하게 드러낸 자기식의 표현을 했다면 마네와 피사로 모리조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옮기는 정직한 인상파적 표현을 보여줬다”고 말이죠.

베르트 모리조, 빨래 말리기, 1875, 미국 내셔널갤러리 소장
베르트 모리조, 빨래 말리기, 1875, 미국 내셔널갤러리 소장


그러니, 자신을 억지로 내세우거나 인위적인 무언가를 더하기보다 공간을 읽고, 적재적소에 필요한 요소를 더하는 능력이 바로 모리조가 가졌던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미나리의 순자를 보고 이 그림이 생각이 났던 것이고요.

물론 때로는 자아를 강하게 내세우고 주장할 필요도 있지만, 지금처럼 온 지구가 시름시름 앓고 병들어가는 시대엔 주변을 돌아보는 여성의 섬세한 지도력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것 같습니다. 또 그렇다고 모리조가 자신을 숨기거나 체제에 순응하기만 했던 것도 아니구요. 그녀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강인한 힘은, 살롱전 입상을 포기하고 인상파의 가치를 믿고 나아갔던 줏대있는 자아에서 나올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부엌 한 가운데서 당당히 선 여자, 공간을 휘어잡고 가정의 중심을 세우며 사회의 뿌리가 되고있는 모든 엄마들에게 이 그림을 바칩니다.
참고한 자료
베르트 모리조 위키피디아 영문 페이지(https://en.wikipedia.org/wiki/Berthe_Morisot)

미국 내셔널 갤러리 작품 소개 페이지(https://www.nga.gov/collection/art-object-page.46660.html)

베르트 모리조 브리태니커 웹페이지 (https://www.britannica.com/biography/Berthe-Morisot)

전하현 저, 인상주의: 인상파 속 숨겨진 진실과 새로운 개척자들(일러스트레이션 세계 예술문화사), 생각의나무, 2011년.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