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보다 싫은 연기도 끝을 봐” “젊은이보다 더 신세대”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4월 27일 03시 00분


[한국배우 첫 아카데미 연기상]감독-배우-작가들이 말하는 윤여정

“아들뻘인데도 한 번도 어르신이란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나영석 PD)

“연기보다 실제 모습에서 매력이 훨씬 크다.”(이재용 감독)

함께 작업한 이들이 말하는 윤여정은 사람과 영화에 진심인 배우다. 자신에겐 엄격하지만 마음을 준 타인에겐 관대하다. 육신의 나이를 떠나 생각이 깨어 있는 청춘 그 자체이기도 하다.

○ ‘좋은 사람과 함께 간다’는 신조

늘 새로운 역할에 도전해 온 윤여정이지만 그에게도 도전 중의 도전으로 꼽히는 역할이 있다. 영화 ‘죽여주는 여자’에서 노인들의 섹스와 자살을 돕는 65세의 ‘박카스 할머니’를 연기했다. 10여 년을 친구로 지낸 이재용 감독(55)의 부탁에 출연을 결정했다.

이 감독은 “서로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에 저를 믿고 지지해 주셨다”고 했다. “세월의 힘이었죠. 오랜 시간 지켜보면서 최소한 배우를 함부로 이용하거나, 진정성 없이 영화를 만들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신 것 같아요.”

‘좋은 사람’과 작업한다는 윤여정의 신조는 여러 감독들과의 작업에서도 두드러진다. 임상수 감독(59)은 “‘미나리’는 주연배우부터 막내 스태프까지 인건비를 n분의 1을 할 정도로 열악한 제작 환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정 감독을 처음 봤을 때부터 좋은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으셔서 출연을 결정하셨을 것”이라고 했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 처음 만난 송해성 감독(57)과는 윤여정이 꼭 넣길 바랐던 장면을 ‘통편집’하면서 앙금이 생기기도 했다. 틈틈이 연락을 이어 오다 ‘고령화 가족’에서 다시 만났다. 송 감독은 “책(시나리오)을 전달하러 갔더니 통편집 이야기를 하시면서 책도 안 보고 ‘안 하겠다’고 하셨다. 얼마 안 있어 ‘자녀는 누구냐’고 물으시기에 윤제문, 박해일, 공효진이라고 하니 ‘자식이 맘에 든다’며 쿨하게 하시겠다더라. 겉으론 ‘나 안 해’ 하시지만 거절도 잘 못하신다”고 전했다.

○ 죽기보다 싫어도 영화를 위해선 한다

감독과 작가들이 말하는 윤여정은 연기를 위해 투신하는 배우다. 노희경 작가는 윤여정에 대한 기고글에서 “지문 하나 없이 ‘…’만 있어도 미치게 연기를 해낸다. 젊은 나이에 혼자 몸으로 두 아이를 키워내면서, 예쁘지도 않은 얼굴과 좋지도 않은 목소리로, 게다가 아첨할 줄도 모르는 성격으로 그녀가 오늘의 자리에 오기까지 그녀의 숭고한 노력과 극(그녀에게는 삶일 것)에 대한 애정을 어찌 감히 상상할 수 있겠는가”라고 썼다.

‘죽여주는 여자’는 매우 낡은 여관에서 촬영이 진행돼 비위가 약한 윤여정은 밥 한 숟갈도 제대로 넘기지 못했지만 감독의 지시를 끝까지 수행해냈다.

“남성 고객의 사타구니에 주사를 놓는 장면이 있어요. 윤 선생님은 한 테이크에 끝내길 바라셨지만 디테일을 살리려는 제 욕심에 세 테이크를 가게 됐어요. 두 번 찍고 ‘더 이상 못 찍겠다’고 하셨는데 한 번 더 부탁을 드렸죠. 죽기보다 싫으셨겠지만 해주셨어요. ‘영화는 영원히 남는 거니까 감독 말을 들어주자’는 생각이 있으세요.”(이재용 감독)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에서는 전도연에게 밀쳐져 바닥에 세게 넘어지는 장면에서 대역을 거부하고 직접 소화했다.

“스턴트맨을 쓰자고 제안드렸는데 직접 하겠다고 하셨어요. 현장에서 전혀 힘든 티를 안 내셔서 몰랐는데 다음 날 허벅지에 엄청 큰 멍이 든 걸 보고 깜짝 놀랐어요. 몸을 아끼지 않는 모습에 괜히 대배우가 아니구나 싶었습니다.”(김용훈 감독)

보이지 않는 곳에선 대본을 파고드는 완벽주의자이기도 하다. 이재용 감독은 “‘대사를 잘 못 외우게 되면 연기를 그만둘 거다’라고 말씀하시곤 한다”며 “본인이 타고난 배우가 아니라고 생각하시기에 끊임없이 노력한다”고 했다. 임상수 감독은 “NG가 거의 없는 배우”라고 했다.

○ 연예계가 인정하는 타고난 이야기꾼

유머 넘치는 입담도 많은 이들이 꼽는 윤여정의 매력이다. 나영석 PD는 26일 본보와의 통화해서 “버릇없이 들릴 수도 있지만 윤여정 선생님은 친구 같은 사람이다. (내가) 아들뻘인데도 대화를 나누면서 한 번도 어르신이란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편하게 속마음을 털어놓는데 그 안에 위트와 재치가 있다. 대화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말했다.

배우 송혜교는 24일 방영된 OCN ‘윤스토리’에서 “가끔 선생님과 와인을 마시는데 ‘어떻게 마인드가 젊은 친구들보다 더 신세대 같으시지’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가끔은 제가 더 고리타분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며 “많이 웃어서 선생님 뵙고 집에 오면 팔자주름이 더 선명하게 생겨서 가끔 만나야겠다고 생각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이재용 감독은 “굉장히 기억력이 좋으시고 이야기꾼 소질이 있으시다. 연예계 이야기부터 본인의 과거 이야기까지 흥미로운 이야기를 끊임없이 하시고, 촌철살인의 농담도 잘 던지신다”며 “그분의 매력은 연기보다 실제 모습에서 훨씬 크기에 윤여정이라는 개인이 드러나는 페이크 다큐 형식의 ‘여배우들’(2009년)을 만들었다”고 밝혔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
#윤여정#신세대#한국배우 첫 아카데미 연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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