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환, 발레 도전 노인역 열연에 중장년층 “환갑 앞두고 학원 등록”
“포기하려던 음악공부 다시 시작”
윤여정 오스카 수상에도 위로 받아… “동년배 배우의 멋진 모습에 용기”
“인생 2막 열어갈 힘과 희망 생겨”… ‘미나리’ 관객 50대 이상 큰 비중
8일 드라마 제작사 스튜디오 드래곤 앞으로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받는 이는 tvN ‘나빌레라’ 제작진, 보낸 이는 자신이 60대라고 했다. 이 60대는 가지런한 글씨로 편지 한 장에 자신의 일상을 고백했다. 그는 이렇게 전했다.
“최근에 음악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예순을 훌쩍 넘어 일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돼서야 난생처음 피아노, 성악을 배우다 보니 여간 힘들지 않더군요. 너무 늦었단 생각에 포기해야 하나 갈등하던 중에 나빌레라를 봤습니다. 저도 모르게 박인환 배우님에게 동화돼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보기로 했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며 예전 같지 않은 체력과 사회에서 소외되어 가는 듯한 기분 때문에 소극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무언가 용기 내 도전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노년 배우들의 활약이 중장년층의 생에 깊은 흔적을 남기고 있다. 이들은 70세에 발레에 도전하는 심덕출(박인환)을 보고 마음 한구석에 접어놨던 꿈을 꺼낸다. 74세의 나이에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윤여정을 보며 삶을 버틸 용기를 얻는다. ‘내리막길 인생’으로 치부됐던 이들에게 노년 배우들의 발자취가 희망으로 비치는 것이다.
27일 중장년층이 주를 이루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59세 남성이라고 밝힌 이는 “나빌레라를 보다 학창 시절 발레를 전공한 아내가 환갑을 1년 앞두고 다시 발레학원에 등록했다. 참 자랑스럽다”고 썼다. 드라마를 연출한 한동화 PD(49)는 “힘든 시기를 살아가는 중장년층에게 가벼운 응원보다는 깊은 감동으로 힘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70년이란 세월을 보낸 ‘진짜 덕출’이 필요했고, 박인환 나문희 선생님 덕에 주름 하나, 대사 한마디로도 진정성을 표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미나리’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는 중장년층 관객들이 많은 것 또한 세월이 흘러도 바래지 않는 열정과 도전정신을 느끼기 위한 이유가 크다. 지난주 미나리를 관람한 김용상 씨(65)는 “한국에선 이미 ‘국민배우’ 반열에 오른 윤여정이 일흔이 넘은 나이에 뒤늦게 미국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다기에 궁금해서 영화를 봤다”며 “지금까지 봐 온 윤여정의 연기 중 가장 진짜 같았다. 시간과 연륜이 헛되이 지나가는 게 아니라 쌓이고 쌓여서 지금의 나를 만든다는 생각에 위안이 컸다”고 밝혔다. 최근 영어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는 최모 씨(66·여)도 “전공이 공학이었는데 젊을 때 한 일은 비서였다. 같은 여성으로서 자기가 하고 싶은 걸 꾸준히 도전했고, 그걸로 상까지 받은 윤여정이 ‘멋진 동년배’로 보였다. 죽을 날 받아놓은 양 심심하게 살아오던 우리에게 희망이 됐다”고 말했다.
미나리를 향한 중장년층의 관심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28일 CGV 데이터전략팀에 따르면 미나리는 타 영화 대비 50대 이상 예매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미나리가 개봉한 지난달 3일부터 아카데미 시상식 전날인 25일까지 미나리의 50대 이상 예매율은 26%였다. 같은 기간 미나리를 제외한 다른 영화들의 50대 이상 예매 관객은 15%였다. 타 영화에 비해 50대 이상 관객 비중이 11%포인트나 높은 것. 아카데미 시상식 이후에는 미나리 예매 관객의 50대 이상 비율이 26%에서 27%로 1%포인트 소폭 상승했다. 황재현 CGV 커뮤니케이션팀장은 “50대 이상은 당일 현장 구매 비중이 높기 때문에 이들의 예매율이 전체의 26%에 달하는 건 매우 높은 수치”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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