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의 바른 표기가 자장면이던 시절, 영화 ‘연애술사’(2005년)의 한 대목이다. 경직된 어문규범에 대한 저항의 상징과도 같았던 짜장면의 처지를 절묘하게 보여준다. 잘 알다시피 짜장면은 언중의 말 씀씀이에 힘입어 2011년 8월 31일 표준어가 됐다.
그런데 이상하다. 짬뽕은 왜 잠봉이라 하지 않았을까. 짬뽕은 ‘서로 다른 것을 뒤섞다’는 뜻의 ‘짬뽕하다’라는 말이 생겨날 만큼 굳어진 관행으로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껌’이 ‘껌값’이라는 파생어가 나올 만큼 세력을 얻어 ‘검’으로 적을 이유가 없어진 것처럼.
세상이 각박해져서일까. 요즘 들어 된소리로 변해가는 말이 부쩍 많아졌다. 외래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러다 보니 외래어 표기 규범과 종종 부딪친다. 예를 들어 중국 음식점에서 ‘빼갈’을 마시고, 사전에서는 ‘배갈’을 찾는다. 입으로는 타이어가 ‘빵꾸’ 났다면서도 ‘펑크’라고 표기하는 식이다. 이어령 선생은 ‘뜻으로 읽는 한국어사전’에서 ‘끼’라는 말도 ‘과(科)’를 ‘꽈’로 발음하는 젊은이들의 기류에 힘입어 굳어진 말이라고 보았다. 사전은 ‘어떠한 기운’을 나타내는 ‘기(氣)’와 연예에 대한 재능이나 소질을 속되게 이르는 ‘끼’를 함께 올려놓았다.
우리말에는 기와 끼처럼 뿌리가 같으면서도 말맛은 사뭇 다른 것이 많다. ‘백’과 ‘빽’, ‘강술’과 ‘깡술’을 꼽을 수 있다. 언중은 하나같이 뒷배가 든든한 사람을 가리켜 ‘빽이 좋은 사람’이라고 한다. “빽 믿고 함부로 나대지 말라”는 드라마 속 대사도 쉬이 만날 수 있다. 이것을 표기 규범의 틀 안에서 ‘백이 좋은 사람’이라거나 ‘백 믿고…’라고 한다면, 모르긴 몰라도 말맛과 의미를 모르는 사람으로 여겨질 것이다. 그래서일까. ‘빽’은 글맛과 말맛을 중히 여기는 칼럼 등에 자주 등장한다.
깡술도 빽과 닮았다. 언중은 열이면 열, 깡술이라고 한다. 이를 예사소리인 강술이라고 하면 안주 없이 들입다 마시는 분위기가 제대로 느껴지지 않는다. 깡술에는 서민의 애환이나 울분 같은 게 서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라도 깡술을 ‘강술’로 쓰라고만 할 게 아니라 제대로 된 뜻풀이를 더해주어야 한다.
또 있다.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배우 윤여정이 ‘미나리’에서 연기한 할머니는 미국 아칸소주 ‘깡촌’에 정착한 딸과 사위를 도우러 한국에서 왔다. 허나 아쉽게도 사전엔 ‘깡촌’은 없고, ‘강가에 있는 마을’이라는 강촌(江村)만 올라 있다.
이처럼 된소리를 즐겨 쓰는 현상을 풀 방법은 없는 걸까.
된소리로 낼 까닭이 없는데도 습관적으로 쓰는 것과 말맛을 살려야 하는 것을 구분하면 된다. 주꾸미를 쭈꾸미로, 족집게를 쪽집게로 제 아무리 세게 발음해봤자 의미상 달라질 게 없다. ‘빽’과 ‘깡술’은 다르다. 말맛과 의미에서 표준어와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그러므로 표기 규범만 고집하지 말고 언중의 말 씀씀이를 받아들여 표제어로 삼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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