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포미니츠’의 피아노 천재 재소자役 배우 김환희-김수하
“마지막 4분 연주 위해… 손-팔이 온통 멍투성이죠”
김수하(왼쪽), 김환희 배우는 ‘포미니츠’ 무대에 함께 오른 김선경, 김선영을 비롯해 최정원, 전미도 배우를 롤모델로 꼽았다. 둘은 “철저히 자기관리를 하고 언제나 꿋꿋하게 무대에 오르는 선배들을 닮고 싶다”고 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광기를 묘사할 때 흔히 ‘뿜어낸다’고 한다. 하지만 피아노 앞에 홀로 선 소녀 ‘제니’의 광기는 객석에 스며든다. 멍이 들 때까지 거칠게 피아노를 때리고, 신들린 듯 건반을 내리칠수록 더 궁금해진다. 이 광기엔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입소문을 타고 순항 중인 뮤지컬 ‘포미니츠’에선 제니 역의 두 배우 김환희(30), 김수하(27)의 연기가 빛난다. 최근 서울 중구 국립정동극장에서 만난 둘은 “좀체 적응할 수 없을 만큼 어려운 작품이다. 진짜 많이 울고 몸도 아팠다”면서도 “회를 거듭할수록 제니와 점차 익숙해지는 자신을 발견한다”고 입을 모았다.
작품은 2006년 개봉한 동명의 독일 영화가 원작이다. 이듬해 독일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고 작품상을 수상했고 이를 눈여겨본 뮤지컬 배우 양준모가 예술감독이자 기획자로 참여해 판을 짰다. 60년간 재소자에게 피아노를 가르친 독일의 실존인물 거트루드 크뤼거의 삶을 모티브로 삼아 그가 감옥에서 만난 제니와 교감하는 이야기다. 크뤼거 역은 김선경과 김선영이 맡았다.
18세 소녀 제니의 삶은 상처로 얼룩졌다. 한때 피아노 천재로 통했던 그는 양아버지에게 학대받고, 남자친구의 살인죄를 뒤집어쓰게 돼 교도소에 들어왔다. 불신으로 가득한 그는 길들여지지 않은 망아지처럼 현실 속에서, 건반 위에서 날뛴다. 김환희는 “제니는 에너지가 매우 큰 인물이다. 공연 없는 날엔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다음 날 무대를 위해 충전만 하고 있다”고 했다. 김수하는 “‘뭐든 제니답게 하라’는 제작진의 지침이 단순한 듯하면서도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둘은 베테랑인 김선경, 김선영과의 팽팽한 신경전에도 밀리지 않는 연기를 보여준다.
위 사진은 피아노 앞에서 연기하는 김수하, 아래 사진은 김환희. 국립정동극장 제공캐릭터 자체도 버겁지만, 준비 과정에서 이들을 울게 만든 1등 공신은 피아노다. 연기하고 연주하는 ‘액터 뮤지션’이 되어야 했다. 피아노와 거리가 멀었던 둘은 지난해 10월부터 맹성연 음악감독과 ‘특훈’에 돌입했다. 무대 중앙에 떡하니 놓인 스타인웨이 피아노를 오롯이 제 몸처럼 다스려야 했다. 김수하는 “연습 때 바닥까지 자신을 괴롭히고 우울해지는 편이다. ‘그래도 해보자’는 언니(김환희)가 없었으면 포기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둘은 이번 작품에 대해 “배우로서 한계치에 도전하고 있다”고 했다. 맹연습의 진가는 마지막 4분에서 두드러진다. 손가락으로 피아노 줄을 할퀴거나 피아노 위, 옆면을 손과 팔로 타악기처럼 두드린다. “마지막 4분만 봐도 티켓 값 다 한다”는 평이 나올 정도로 압권이다. 김환희는 “지인들이 공연이 끝나도 쉽게 다가오질 못하더라. ‘작은 거인’ 같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고 밝혔다. 김수하도 “친구들은 보통 ‘수고했다’고 하는데 이번엔 ‘미친 여자 같다’거나 ‘존경스럽다’고 했다”며 웃었다.
둘은 작품을 같이하며 맘을 터놓고 지내는 언니, 동생 사이가 됐다. 어두운 극 분위기와 달리 연습실은 늘 까르르 웃는 소리로 가득하다. 2015년에 데뷔한 김환희와 김수하는 각각 2019년, 2020년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신인상을 받았다. 김수하는 이듬해 ‘렌트’로 여우주연상도 받았다.
인터뷰 중 상대의 고충을 들을 때마다 고개를 격하게 끄덕이던 둘은 손과 팔을 보며 가장 크게 탄식했다. “멍이 너무 많아서 손과 팔에 멍 분장을 안 해도 될 것 같아요.”(김수하) “수하야, 멍 크림 꼭꼭 발라야 돼.”(김환희)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