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미술관 ‘재난과 치유’展
지구촌 덮친 코로나 재난상황, 감정-심리 대담하게 표현
절망 속 희망 찾고 위로 건네
국내외 작품 60여점 전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공군 부조종사가 몬 전투기가 러시아 크림반도에서 격추됐다. 그를 구해준 이는 타타르 유목민. 동물 지방과 펠트 천으로 감싸여 치료를 받은 그는 이후 미술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의 이름은 요제프 보이스(1921∼1986). 그는 한때 자신을 죽음에서 구해준 펠트를 이용해 여러 작품을 만들었다. 그에게 펠트는 생명을 지키는 에너지이자 따뜻함 자체였다.
22일 열린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재난과 치유’ 기획전의 포스터 작품은 요제프 보이스의 ‘곤경의 일부’다. 작품을 통해 개인적, 사회적 상처를 치유하고자 한 그의 의도처럼 이번 전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맞아 관람객에게 예술을 통한 위로를 건넨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은 25일 언론 간담회에서 “감정 표현이 매우 절제된 한국 미술문화에서 재난과 희비애락이 대담하게 표현된 경우는 드물다. 이런 전통에 도전하는 전시”라고 소개했다.
행위예술가 프란시스 알리스의 영상 작품 ‘금지된 발걸음’은 전시 취지와 맞닿아 있는 대표작이다. 뿌연 화면 사이로 숲 어딘가에 버려진 듯한 콘크리트 건물이 나온다. 난간 하나 없는 옥상. 경계를 벗어나는 순간 추락할 수밖에 없는 옥상을 한 남자가 더듬거리듯 걷는다. 지난해 10월 홍콩 라마섬을 배경으로 제작된 이 작품은 인간에게 닥친 팬데믹의 불확실성을 상징한다. 이진주는 구조물의 단면에 회화를 그려 넣은 작품 ‘사각’에 코로나19로 인한 고통을 담았다. 핏물이 채워진 수영장에 마스크를 끼고 앉은 소년들과 흰 천을 뒤집어쓴 사람들의 모습은 답답함과 불안함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불안은 단지 감정으로만 그치지 않는다. 방역당국이 “코로나19 발생 이전의 세상은 이제 다시 오지 않는다”고 밝혔듯 코로나 이후 일상의 공간은 더 이상 이전과 같지 않게 됐다. 서도호는 손잡이를 매개로 이 같은 변화를 포착했다. 손잡이를 만지는 행위는 어느새 강박과 두려움을 낳았다. 3차원(3D) 모델링을 활용한 설치 작품은 손잡이 모형 주위로 바이러스가 퍼지는 형상을 연상시킨다.
사회적 거리 두기에도 누군가는 위험을 무릅쓰고 직장에 나와야 한다. 상당수는 플랫폼 노동자들이다. “누군가의 안전은 누군가의 위험을 담보로 성립된다”는 홍진훤은 배달 노동자들에게 주목한 작품을 선보였다. 한쪽 다리를 절며 하염없이 움직이는 영상작품 ‘Injured Biker’를 보고 있노라면 재난이 불러온 소외를 직면하게 된다.
불가항력의 재난 현실에도 김범은 희망을 찾는다. 그는 높이 4m, 폭 3m의 거대한 화폭에 미로를 그려 재난이 뒤덮은 현실을 보여준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상단 왼쪽에 작은 입구가, 하단 오른쪽에 출구가 각각 있다. 전시를 기획한 양옥금 학예연구사는 “전시기획 때부터 크게 다가온 작품이다. 분명 어딘가에 출구는 있다고 말해주는 듯하다”고 말했다. 이배는 설치예술작 ‘불로부터’를 통해 나무가 타고 남은 숯에 존재감을 부여하며 긍정의 메시지를 전한다. 숯은 우리 생활의 에너지원이다. 재난이 닥쳐도 그 이후의 삶을 꿈꾸며 살아가자는 바람을 담았다.
전시는 5가지 소주제로 나뉘어 있지만 이에 국한하지 않고도 충분히 감상할 수 있다. 그만큼 코로나19가 우리 삶에 깊숙이 침투해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봉준호 감독의 단편영화 ‘인플루엔자’도 이번 전시에 포함됐다. 국내외 작가 35명이 60여 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8월 1일까지.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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