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테랑 셰프가 주부를 대상으로 요리를 가르치다 밥 짓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밥은 누구보다 잘 짓는다고 자신하는 사람이 있느냐고 물으니 몇 명이 손을 들었다. 다시 질문했다. 이른바 ‘햇반’보다 밥을 더 잘 지을 수 있냐고 물었더니 쉽게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매일, 그것도 평생 밥을 짓고 있는데 그까짓 햇반 하나를 이기지 못한단 말인가.
엄마들이 집에서 짓는 밥이 늘 똑같지는 않다. 음식 솜씨 끝내준다는 엄마조차 ‘오늘은 밥이 질다’ 혹은 ‘되다’라는 말을 평생 반복하며 밥상을 차린다. 그러다 잘 지은 밥은 매일 똑같아야만 하는지 머릿속으로 질문을 던져 보았다. 가끔은 질거나 되기도 했지만 기억 속 ‘최고의 밥맛’ 역시 엄마의 식탁 위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저 일관된 완성도를 갖기 어렵기에 주부 9단들도 즉석밥 앞에 머뭇거린 게 아닌가 싶다. 우리는 맛있는 반찬이 있을 때 ‘밥만 하면 돼’라고 쉽게 얘기하지만 맛난 밥 짓기란 의외로 쉽지 않다. 그러다 얼마 전 매일 맛있는 ‘정점(頂點)의 밥’을 내놓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1인 솥밥집을 만났다.
주인장은 하루 일과가 끝나면 마감일기를 쓴다. 반성도 하고 기쁨의 환호도 적곤 한다. 법학을 전공한 학원 강사 출신이라는 이력을 뒤로하고 셰프가 된 그의 밥집 일기에 담긴 요리 잠재력은 열정적이다.
학창 시절 사법고시를 준비하기 위해 작은 암자에 들어갔는데, 얼마 안 돼 음식을 만드는 공양주 보살이 그만두게 됐다고 한다. 이때 그가 자청해 한동안 스님들의 식사를 맡았는데 그 솜씨가 남달라 주변 절에 소문이 날 정도였다. 밥에는 누구보다 진심이던 그가 그때부터 ‘법 공부’보다 ‘밥 공부’에 더 소질이 있다는 걸 알게 된 듯하다. 그 뒤 한동안 학생들을 가르쳤지만 밥으로 좋은 맛을 가르치는 게 천직이라고 생각해 서울 송파구 잠실동 한적한 골목에 ‘안재식당’을 열었다. 안재만 사장의 두 글자를 딴 안재(安在)식당은 편안한 휴식처를 의미하는데 밥상의 주인공은 단연코 밥이다.
이곳 솥밥은 누룽지가 없다. 흔히 솥밥을 먹으면 밥을 덜고 뜨거운 물을 부어 누룽지를 즐긴다. 그런데 강한 열로 누룽지를 만들면 수분이 날아가 밥의 찰기가 줄어들게 된다. 이곳에서는 누룽지를 얻기 위한 밥이 아닌 밥 자체를 최적으로 즐길 수 있도록 낮은 온도에서 섬세하게 밥을 짓는다. 밥뿐 아니라 반찬에 들이는 정성도 남다르다. 특히 식재료 선택에 대한 고민이 남다르다. 충북 음성 송고버섯, 경남 밀양 장마을의 장, 경북 문경 약돌돼지…. 최근 ‘아르티장(장인) 다이닝’이 외식 트렌드인데 이곳이야말로 건강백반 아르티장이라고 부를 만하다.
아이들을 가르친 경력 때문에 ‘안 선생’이라 불리는 늦깎이 셰프는 전문 요리 교육을 못 받았다고 아쉬워한다. 하지만 알고 보면 스승이 계셨다. 밀양에서 고추부각을 만들어 보내고 간수 뺀 소금을 챙기는 어머니의 맛을 안 선생은 그대로 좇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 안 선생은 솥밥을 어떻게 지어 내올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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