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에 전자음악 샘플링 해보니…
국립국악원 디지털 음원 서비스, 9개월간 약 1만3000회 다운로드
전자음악가 소월 작업실 찾아 국악기 변형해 리듬 만들고
안숙선 명창의 추임새 믹스… “다양한 대중음악에 활용 가능”
이달 10일 국립국악원이 홈페이지에 획기적인 서비스를 내놨다. 안숙선, 이춘희 등 명창들의 ‘얼씨구!’ ‘으이!’ 같은 추임새와 아니리를 짧은 음원 파일 2800개로 나눠 누구나 내려받을 수 있게 한 것이다.
지난해 9월 내놓은 국악기 단음(短音) 407개, 악구(樂句) 2226개까지 하면 5000여 개의 고급 국악 ‘소스’가 무료 배포된 것. 국악원은 “케이팝, 대중음악, 유튜브 제작 등 다양한 콘텐츠 생산으로 이어질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급 소식을 전자음악가 소월(본명 이소월·35)에게 먼저 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계적 음악 소프트웨어 ‘에이블턴’이 주최한 국제 행사에 한국인 최초로 연사로 초청된 실력가, ‘핑거 드러밍’ 장인, 전직 재즈 드러머.
소월은 왜 이제 알려주냐는 듯 반겼다. 서울 강서구에 자리한 그의 작업실을 23일 찾았다. 톰 요크(라디오헤드) 포스터가 붙은 벽 아래에서 켄드릭 라마 앨범 표지를 바탕화면에 띄워둔 컴퓨터를 소월이 켰다.
먼저 국악 음원 사이트에 들어가 ‘악구’-‘성악’-‘여창’ 섹션을 차례로 클릭했다. 안숙선의 ‘춘향가’ 중 ‘사랑가’ 대목을 골라 여러 구절의 음원을 내려받았다. ‘에이블턴 라이브’ 프로그램을 가동시켰다.
받은 음원에서 ‘춘향이가 하는 말이…’ ‘우리 어머니는 소싯적에…’ ‘오날(오늘)같이 즐거운 날…’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같은 악구를 디지털로 더 잘게 쪼개 여기저기 콜라주했다. 전문 용어로 ‘찹(chop)’ 기법.
이번엔 징 소리를 내려받을 차례. ‘징∼’ 하는 음파를 샘플러에 넣고 고음역대를 필터로 깎아낸 뒤 다이내믹 계열 이펙터로 저음역을 더 부각시켰다. 듣자니 꽤 몽롱했다. 리듬이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정글 뮤직’풍의 비트를 입히니 가히 전북 남원의 광한루가 영국 런던의 지하 클럽으로 빨려 들어갔다. 음악이 딱 멈춘 말미에 ‘…어쩔라고 그러시오∼’를 붙이자 ‘코믹 계몽 음악극’이 완성됐다.
재미가 드니 속도가 붙었다. 이주은 명창의 ‘자진모리방자분부듣고1’ 파일을 내려받았다. 이번엔 자진모리 가야금 샘플도 변형해 넣어보기로 했다.
“가야금 소리가 정말 잘 녹음됐네요. 소리의 길이를 늘인 다음, 소리 입자 크기를 ‘랜덤’으로 변형해 뽑았습니다.”(소월)
‘방∼자 분부 듣고 춘향 부르러 건너간다∼’ 하는 소리에 거문고와 징 소리를 변형해 만든 ‘무그 베이스(moog bass)’ 사운드를 까니 당장 랩을 얹고픈 매력적 미디엄 템포가 됐다. 토핑 삼아 안숙선 명창의 ‘으이!’ ‘하이 그렇지∼’를 얹으니 금상첨화.
소월은 “씽씽, 이날치 신드롬 이후 대중음악가들의 국악에 대한 갈증이 많아진 시기”라면서 “가르치는 학생들(동아방송대 실용음악과)도 국악기 샘플을 보내주실 수 있냐는 문의를 많이 한 바 있다. 명창, 명연주자들이 좋은 음질로 녹음한 음원인 만큼 향후 대중음악에서 잘 활용될 것 같다”고 말했다. 단, 내려받은 뒤 파일명이 원래 제목을 알아볼 수 없게 형성되는 것, 한 번에 최대 10개까지만 내려받을 수 있는 것은 불편한 점으로 꼽았다.
국립국악원 장악과의 이승재 팀장은 “앞서 악기 음원은 지난해 9월부터 현재까지 약 1만3000회 다운로드됐다. 용도와 사용처를 물은 결과 대학, 각종 콘텐츠 제작사, 개인 유튜버 등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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